노숙인 인문학 과정 1기생 13명…졸업뒤 3개월

  • 입력 2007년 1월 31일 03시 00분


2005년 12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교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1기의 강의 모습. 2006년 5월 과정을 수료한 13명의 노숙인은 그 후 9개월 동안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5년 12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교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1기의 강의 모습. 2006년 5월 과정을 수료한 13명의 노숙인은 그 후 9개월 동안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노숙인이 새 인생을 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일까, 사업자금일까.

인문학에서는 ‘스스로를 아낄 줄 아는 자긍심’이라고 말한다.

서울 소재 인쇄기기 수입업체 부장이던 김규호(54) 씨는 외환위기가 끝날 무렵인 2001년 초 정리해고를 당했다.

벌인 사업마저 사기를 당해 퇴직금을 날리고 부인과도 갈라섰다.

그 후 서울역, 용산역 등을 전전하며 보낸 5년.

하지만 김 씨는 이달 초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전 직장에 재입사했다.

소식이 끊겼던 누이,친구와도 연락이 닿았다.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 5년을 보낸 김 씨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2005년 9월 노숙인을 위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에 입학했다.

본보 2005년 12월 21일자 A12면 참조
▶“끼니보다 소중한 자존심 되찾았죠”

처음에는 두 시간 동안 걸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철학, 예술사, 문학, 작문, 역사 등을 배우고 손이 부르트도록 과제를 써내면서 점차 신이 났다.

글을 쓸 때면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세상에 대해 원망만 하던 내게 인문학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강의가 끝나면 매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남산도서관을 찾는 열성을 보여 동료들에게 ‘남산파’란 별명까지 얻었다.

이 과정은 취업을 위한 기술이나 취직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교육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특징.

그렇게 8개월을 보내고 나니 ‘톨스토이도 72세에 부활을 썼는데 50대인 내가 뭔들 못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뒤 그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에 참여해 지난해 12월까지 보라매공원에서 매달 50만 원가량을 받고 시설관리직으로 일했다. 계약이 끝나 일자리를 찾아다닌 이달 초 그는 행여나 싶어 전 직장 사장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예전에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엄두도 못 냈던 일이었다.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학사모를 쓴 인문학 교실 졸업사진이며 힘들게 공부했던 과제물을 보여 줬다. 이틀 뒤 “김규호 씨 많이 바뀐 것 같다. 같이 일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인문학 교실 1기 졸업생 13명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9개월.

그동안 김 씨를 비롯해 3명이 트레일러 운전사 등 정규직으로 취업했고, 4명이 공공·자활근로 등 계약직이나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2명은 구직 중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그들에게 여전히 높다.

지난해 5∼12월 서울시가 추진한 ‘3차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이나 자활후견기관의 자활근로에 참여한 9명 가운데 한 명도 중도이탈(서울시 사업 전체 중도탈락률 40.7%)하지 않았지만 같은 자리에 정규직으로 다시 채용된 경우는 없었다.

또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편견, 자격, 연령 등을 이유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남산공원에서 시설관리를 맡았던 정봉운(50) 씨는 “아파트 경비, 세차요원 등의 일자리도 학력, 경력 등 요구조건이 까다로워 번번이 실패했다”며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와 자신감은 있는데 노숙인들이 발 디디고 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경우 다시 임금이 적고 불안정한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갖기’ 사업에 지원하거나 공공·자활근로를 할 수밖에 없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교실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1기 졸업생
1기 졸업생2006년 5∼12월 (공공사업 계약 기간)1월 현재 (계약 만료 뒤)
김규호(54)보라매공원 시설관리전 직장 재취업
이규철(53)장충단공원 시설관리트레일러 운전사로 취업
이태원(57)종로자활후견기관 자전거사업단인테리어 업체 취업
L(53) 씨남산공원 시설관리자활근로
정봉운(50)남산공원 시설관리자활근로
안남겸(54)서울대공원 시설관리재계약
Y(46) 씨건설 일용직건설 일용직
윤정호(46)서울대공원 시설관리구직 중
이광육(45)용산자활후견기관 영농사업단구직 중
K(62) 씨서울대공원 시설관리, 건강 때문에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지정요양
S(55) 씨건강 때문에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지정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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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49) 씨택시 운전을 하다 사고 낸 뒤 연락 끊김연락 두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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