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간척지 B지구인 부남호를 지나 국도 77호선으로 접어들자 안면도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20여 개의 굴밥집이 줄지어 있다.
모두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집’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가족과 함께 여행 왔다는 임창선(47·대전 서구) 씨는 “모두 방송에 나온 집이라는데 어느 곳이 진짜냐”며 주변에서 서성이던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를 현지인으로 착각한 것.
함께 한 식당에 들어갔다.
굴은 매년 12월경부터 이듬해 2월까지가 제철. 굴밥은 불린 쌀과 함께 은행 호두 대추 콩나물 당근 등을 돌솥에 넣어 지어 낸다.
굴의 향이 밥알에 깊이 배이면서 그 맛이 뛰어나 이 지역의 명물이 됐다.
잠시 후 식탁 위에 놓인 굴밥. 용기는 돌솥이 아닌 뚝배기다. 이미 지어 놓은 밥을 뚝배기에 넣고 양념과 굴을 넣은 뒤 가스레인지 불에 익혀 낸 것으로 보인다.
식당 주인은 편하겠지만 밥알 속엔 굴의 향이 없다. 더구나 밥도 약간 탄 상태다.
“방송에 나온 집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며 임 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다른 굴밥집을 찾아가 보았다.
“제대로 먹으려면 20분쯤 걸려유.” 주인 지현숙(41·여) 씨는 배가 고파도 참으라고 당부했다.
돌솥 안에서 구수하게 익은 굴, 양념간장 속의 달래도 무척 싱싱하다. 밥을 먹은 지 30분도 안 됐으나 한 그릇을 금방 또 비워 낼 수 있었다.
“아주머니, 저 앞에서도 ‘방송에 나온 집’이라 해서 굴밥을 먹었는데 맛이 아주 다르네요.”
지 씨는 “방송에서 동네를 한번 훑고 지나갔는데 모두 ‘방송에 나온 집’이라고 자랑한다”며 “결국 소비자만 골탕 먹는다”고 말했다.
대전 유성구의 ○○닭갈비집 입구에는 ‘일본 NHK방송에 소개된 집’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닭갈비의 경우 양념의 종류와 재는 시간, 팬에 굽는 시간에 따라 맛이 제각각. 이 때문에 프랜차이즈 가맹점이라 하더라도 업소마다 맛에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 업소는 서울 본점이 방송에 소개된 것을 마치 자신의 업소가 소개된 것처럼 광고하고 있다.
우송대 외식조리학과 정혜정 교수는 “관광지마다 ‘방송에 나온 집’이라고 자랑하는 식당이 많은데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며 “간판에 현혹되지 말고 사전에 음식점에 대한 정보를 챙겨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태안=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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