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얼떨떨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의 지성이라고 칭송을 받는 자크 아탈리의 한국에 대한 극찬에 이르면 그동안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되돌아보게 된다.
“한국은 2025년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두 배로 늘어나고,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물론 전망은 전망일 뿐이다. 전망에는 대개 여러 가지 전제가 붙어 있게 마련이다. 전제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관찰자들이 그런 전망을 했다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멀리 보고 쏘는 화살이 멀리 간다고 했다. 희망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핵심 조건이다. 그리고 한국의 대학은 그 희망의 원동력이다.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언제나 결국 사람의 힘이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몫은 미래를 이끌 젊은이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호기심 어린 표정의 새내기들을 보며 한국 대학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한 사회에 있어서 대학의 경쟁력이란 미래에 대한 희망적 전망의 가장 핵심적인 조건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대학과 관련된 이런저런 뉴스를 보면 한마디로 한국 대학에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임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하버드대의 공부벌레들’로 익숙한 미국의 바로 그 학교가 30년 만에 세계화 중심의 가치관을 도입해 교양과목을 개편하였다.
그 내용 중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 대목은 단연 도덕적 사고를 고양하기 위한 과목이다. 미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촌 시대에 적응할 인재를 만들기 위한 교육적 배려로 볼 수 있다. 전공 분야 공부만을 고집하던 하버드대의 이런 변화를 우리 대학들은 어떤 시선으로 보아야 할까. 대학이 일렬종대로 서열화돼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부럽기도 하고, 취업 수단쯤으로 전락한 우리의 고등교육 현실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밀물처럼 전국의 대학에 입학하고, 또 그만큼의 대학 졸업자들이 썰물처럼 사회로 진출한다. 세계가 놀랄 만한 고등교육의 국민적 열망이다. 그 자체만으로 보면 우리 사회의 ‘희망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급변하는 사회는 그만큼 새로운 인재를 필요로 하고 있고, 외형적으로 보면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그것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모두들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21세기형 인재를 키우기 위한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졸업생 취업률로 대학을 서열화하는 당국의 처사에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 학력이 곧 리더십의 요체일 수는 없다. 도덕적이지 못한 지식사회는 사회를 더 큰 혼란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우리는 대학에서 4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에 지식은 물론이요, 그 이상의 것들을 소통(疏通)한다. 대학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것들은 자격증이나 졸업장 말고도 ‘이웃과 더불어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과의 소통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주문 또한 당장 눈에 보이는 ‘실용(實用)’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서 한 차원 성숙해져야 한다. 대학에서의 인성 교육이 더욱더 필요한 시점이다.
손풍삼 순천향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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