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국가에 따라 전쟁도 다른 모양새를 띤다고 말한다. 19세기 유럽인은 어떤 이유로도 민간인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그네들이 유럽 밖에 나설 때면 사정은 영 딴판이었다. 아프리카 등 식민지에서는 학살과 만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곤 했다. 왜 그랬을까?
유럽 사회에서는 군인과 민간인이 분명하게 나누어졌다. 그러나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는 모든 남자는 곧 전사들이었다. 마을에 일이 벌어지면 모두가 나서 싸움판에 뛰어들었던 까닭이다. 여자와 아이는 이들을 돕는 ‘후방세력’일 테고. 따라서 유럽 침략자들에게 식민지 모든 사람은 곧 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릴라’전이라는 허울 아래 민간인들이 숱하게 목숨을 잃게 된 이유다.
테러와의 전쟁도 그렇다. 테러리스트들은 군인만 공격하지 않는다. 이를 진압하는 군대도 마찬가지다. 적이 분명하지 않기에, 죄 없는 사람들도 죽고 다친다. 테러와의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기에 더욱 두렵고 무섭다.
나아가 테러리스트들은 국가를 난처한 상황에 몰아넣는다. 게르하르트 슈타군은 테러리스트들의 협상 전략을 이렇게 정리한다. 국가는 군대와 경찰이 행사하는 힘만을 정당한 폭력으로 인정한다. 테러리스트들이 아무리 협박해도 국가가 응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하지만 국가에게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다. 위협받는 국민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법. 납치 등의 위협이 닥치면 국가는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을 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곤 한다. 이는 국가권력 외에 폭력 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원칙과 어긋난다.
테러리스트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린다. 공포를 불어넣어, 정부가 자신들을 인정하고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한다. 테러 공포가 널리 퍼질수록 그네들의 협상력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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