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는 콘텐츠의 측면(내용)과 프레젠테이션의 측면(형식)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 교육에서는 두 영역을 나누어 접근할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교육은 콘텐츠 측면에 접근하는 것이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교육은 프레젠테이션 측면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논술 교육에서도 ‘무엇을’과 ‘어떻게’를 때로는 함께, 때로는 적절히 나누어 교육해야 합니다.
우선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논술 교육은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다양한 주제와 쟁점, 그리고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논술 교육은 본질적으로 통합교과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을’에 대한 논술 교육은 수능이나 내신과 별개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각 교과에서 배우는 내용을 총괄하여 다루며, 개별 지식 근저에 놓여 있는 보편적이고 원리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 점에서 ‘무엇을’에 대한 논술 교육은 내신과 수능 대비 학습을 더 심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배경 지식을 심화 학습하는 차원에 그쳐서는 곤란합니다. 창의력을 중시하는 통합교과형 논술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교과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 적용, 응용하는 사고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 글의 내용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각 교과에서 교과 내용을 활용해 그에 맞는 사고 훈련을 각자 수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논리적이고 수리적인 사고를 훈련하고, 사회 시간에는 사회적 쟁점을 활용하여 문제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해결책을 다각도로 모색해 보는 사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결국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논술 교육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미 강조한 바 있지만 교과서의 주관식 문제를 적극 활용하여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다양하게 기르는 훈련입니다. 수능에 대비한 선다형 문제풀이에 그치지 말고, 교과서의 주관식 물음들에 대해 토론하고 답을 글로 작성해 보는 과정이 더 확대되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논술 교육은 한 교과가 담당하기 힘들고 모든 교과에서 함께 시행되어야 함이 분명합니다. 다양한 주제와 쟁점을 어느 한 교과에서 접근하기는 힘들고, 사고 훈련도 각 교과에서 교과의 내용에 맞게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어 교사는 물론 도덕, 역사, 사회 교사, 나아가 수학, 과학 교사까지 모두 참여해야 합니다. 개별 교과에서 주제에 대해 원리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면 철학 교사를 잘 활용하여 논술 교육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논술 교육을 위해서는 우선 국어 교과에서 글쓰기의 기초를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동안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던 작문 시간이 정상화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더는 수능 문제집 풀이로 대치하는 상황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논술은 그냥 글쓰기가 아니라 논증적 글쓰기입니다. 따라서 ‘어떻게’에 대한 교육에서도 논리적, 비판적 사고의 훈련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므로 논리적, 비판적 사고의 전문가인 철학, 논리학 교사가 국어 교사와 함께 참여한다면 교육 효과는 더 커질 것입니다. 또한 외국어 교과 교사들도 참여해서 일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어 교육에서의 에세이 작성(essay-writing)은 우리의 논술과 다르지 않으므로, 영어 교사도 곧바로 논술 교육에 참여하여 글쓰기 지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소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논증적 글을 써 보는 기회를 개별 교과에서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의 교육이 표현의 기술이나 구성의 요령을 익히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하겠습니다. 논리적, 비판적 사고 훈련을 통하여 논증 능력을 기르고 나아가 합리적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실 논술에서 비판적 사고는 두 차원에서 다 필요합니다. 우선 ‘무엇을’과 관련하여 글의 내용이 올바르고 적절한지 비판적으로 검토할 능력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어떻게’에 관련해서도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어떻게’의 차원에서는 표현과 구성의 테크닉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존재하는 ‘맥락(context)’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결정적입니다. 글쓰기는 결국 특정한 맥락 속에서 글을 쓰는 작업입니다. 특히 남을 설득하는 논증적 글인 논술의 경우, 독자와 상황은 꼭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어떤 독자를 대상으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적절한 글쓰기 전략을 선택하여 자기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맥락을 이해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표현이나 구성의 테크닉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표현과 구성은 물론이고 내용을 선택할 때에도 맥락에 대한 비판적 판단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다음 기회에 검토해 볼 것입니다. 오늘은 단지 ’어떻게‘에 대한 논술 교육은 표현의 테크닉만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상황을 포함한 글쓰기의 맥락 전체를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만 일단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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