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구직자, 일자리는 없는데 눈높이만 치솟아

  • 입력 2007년 3월 8일 03시 00분


취업정보업체인 잡코리아가 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2007 성균관대학교 취업박람회’를 열었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개강과 동시에 각종 취업설명회와 박람회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취업 정보 게시물을 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취업정보업체인 잡코리아가 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에서 ‘2007 성균관대학교 취업박람회’를 열었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개강과 동시에 각종 취업설명회와 박람회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이 취업 정보 게시물을 보고 있다. 변영욱 기자
《2005년 대학을 졸업한 뒤 일자리를 찾고 있는 정경아(가명·25·여) 씨는 취업 관련 업체에 이력서를 등록하며 희망 연봉을 2800만∼3000만 원이라고 적었다. 그는 “대기업 평균 연봉이 2600만∼2800만 원인데, 나는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서울 중상위권 대학 출신인 데다 어학연수 경험이 있고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 등의 자격증도 4개나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아직 그가 원하는 만큼의 연봉을 주겠다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본보-인크루트 이력서 111만건 공동 분석

○ ‘희망 연봉’ 상승률이 ‘실제 연봉’ 상승률 웃돌아

청년 취업난이 가중되는 가운데서도 대졸 취업 준비생들의 ‘직장 눈높이’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구직자들이 어학연수, 자격증 취득 등의 준비를 철저히 하는 데다 ‘학력 인플레’까지 겹쳐 직장 선택의 기준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본보가 취업 전문업체 인크루트와 공동으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구직자들이 이 회사에 취업 알선을 의뢰한 이력서 111만4591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대졸 구직자의 ‘희망 연봉’은 실제 대졸 취업자의 초임보다 240만 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차이는 2003년 39만 원, 2004년 101만 원, 2005년 223만 원으로 매년 벌어져 왔다.

대졸 구직자의 희망 연봉은 2003년 1799만 원, 2004년 1878만 원, 2005년 2041만 원, 2006년 2137만 원이었다. 2006년 희망 연봉은 2003년에 비해 18.8% 늘었다. 반면 연봉 전문 사이트 오픈샐러리가 조사한 국내 전체 기업의 대졸 초임은 2003년 1760만 원에서 지난해 1897만 원으로 7.8% 오르는 데 그쳤다.

○ 괜찮은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이처럼 희망 연봉이 실제 연봉과 차이가 있는 것은 구직자들이 접하는 임금 정보가 대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경희대 4학년생인 전모(22·여) 씨는 “어느 대기업에 들어간 선배들이 연봉 3000만 원을 받았다는 따위의 소문이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연봉 3000만 원은 지난해 매출액 순위로 업종별 상위 10대 기업의 대졸 초임 평균(3023만 원)에 가깝다. 상장 기업의 평균 연봉은 2651만 원이고 중소기업을 포함한 전체 기업 평균은 업종별 10대 기업의 평균보다 1126만 원 적은 1897만 원에 그친다.

인크루트 최승은 팀장은 “대기업 위주의 연봉 정보가 구직자들 사이에 유통되면서 ‘나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직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한 ‘괜찮은 일자리’는 오히려 줄고 있는 추세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정규직이면서 △평균 임금의 1.5배 이상을 받고 △주당 근로시간이 18∼50시간인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는 2002년 71만3961개에서 2005년 67만2053개로 4년 사이에 약 8만 개나 줄었다. 그나마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기면서 신입사원이 이런 일자리를 찾을 기회는 더 줄고 있다.

○ 청년 실업 고착화 우려

학력 인플레 등으로 높아진 구직자의 눈높이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부추기고 청년 실업을 고착화하는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2003년 이후 7.9∼8.3%의 높은 수준에 고착됐다”며 “청년 실업이 고착된 이유는 산업 수요에 비해 과도하게 청년층 고학력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표한형 연구위원은 “취업시장에서 한번 뒤처지면 만회하기 어렵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구직자들이 구직 기간을 늘리더라도 처음부터 좋은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고학력 청년층도 노동시장에서 보상받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최근 고학력자들이 임금이 낮은 일자리를 찾는 사례도 늘고 단순히 모든 구직자의 희망 연봉이 높아진다고는 보기 어렵다”면서도 “구직자들의 선호가 여전히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기업 위주인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 손 연구원은 “청년층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고용 능력 제고가 필수”라고 제안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작년 4년제 대졸자들, 구직서 취업까지 평균 10.7개월

지난해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 구직 활동에 나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10.7개월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정보업체 잡코리아는 지난해 일자리를 구한 4년제 대졸 취업자 1050명을 대상으로 ‘취업 준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7일 밝혔다.

구직 기간별로는 ‘10∼15개월 미만’이라는 응답이 37.1%로 가장 많았다. 이어 ‘3개월 미만’(18.5%), ‘3∼6개월 미만’(14.8%), ‘6∼10개월 미만’(9.8%) 순으로 나타났다. 25개월 이상 구직 활동을 했다는 응답자도 9.2%를 차지했다.

취업의 성공 요인을 묻는 질문에는 ‘성공적으로 면접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22.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무 관련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험(20.1%) △눈높이를 낮췄기 때문(13.8%) 등의 순이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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