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추운데 맛있게 해 드릴게요.”
8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용강동 먹자골목 내 30여 평 규모의 식당.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들어서자 여주인 두 사람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한 명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다른 한 명은 밑반찬과 물을 테이블로 가져다 날랐다.
여성가장인 김미경(가명·50) 씨와 정혜숙(가명·40) 씨는 지난해 5월 이 식당의 ‘사장님’이 됐다. 두 사람의 가능성을 믿어 준 아름다운재단의 창업지원금이 발판이 됐다.
○ 믿음으로 내밀어 준 손길
정 씨가 2005년 모자원에 입소했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여덟 살 난 딸아이뿐이었다. 생후 15일 만에 뇌종양 진단을 받은 아이. 한 달에 20일이 넘는 병원생활, 하루 25만 원꼴인 병원비는 정 씨 부부에게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됐다. 결국 치료가 끝나가던 2004년 봄 아파트를 날리고 남편과도 헤어졌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됐지만 정부보조금으로는 월세방조차 구하기 어려워 찾은 모자원에서 정 씨는 10년 가까이 식당일을 하며 아이 2명을 홀로 키워 온 김 씨를 만났다. 열 살 위인 김 씨는 아름다운재단이 저소득 여성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아름다운세상기금’에 대해 말하며 동업을 제안했다.
○ ‘아름다운세상기금’과 ‘희망가게’
머리를 맞대 사업계획서를 쓰고 까다로운 면접과 현장실사를 거쳐 1인당 3000만 원씩 모두 6000만 원의 창업자금을 지원받았다.
드디어 지난해 5월 음식점 간판과 함께 ‘희망가게 10호점’이란 문패를 내거는 순간 김 씨의 눈엔 눈물이 핑 돌았다.
“일어설 기회가 있을까 싶었어요. 담보도 없는데 음식 할 줄 아는 것 하나 믿고 창업자금을 지원해 주더라고요. 아이들도 ‘사장님 엄마’를 좋아하고 이제 희망만 보려고요.”(김 씨)
이들이 도움받은 ‘아름다운세상기금’은 ㈜아모레퍼시픽과 아름다운재단이 공동 시행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무보증 소액창업 대출)의 일환.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주인 고 서성환 회장의 유지에 따라 2003년 유족이 재단에 당시 시가 50억 원 상당의 주식 7만4000주와 2002년도 이익배당금을 기부했다.
재단은 기금의 운영수익을 재원으로 저소득 여성가장에게 창업자금과 컨설팅, 사후 관리 지원을 시작했다. 이렇게 문을 연 ‘희망가게’가 미용실, 피자집, 분식점 등 지금까지 모두 12곳. 기금을 받고 창업을 준비하는 여성가장도 6명이 더 있다.
○ ‘희망의 빛’은 돌고 돈다
‘아름다운세상기금’으로 지원되는 창업자금은 대출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상환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희망가게를 연 여성가장들은 사회에서 받은 나눔의 혜택을 또 다른 여성가장들이 일어서도록 되돌려 주고 있다.
아름다운재단 정온주 간사는 “이들은 창업 3∼6개월 뒤부터 매달 40만 원가량 기부 형식으로 줄어든 기금을 채워 나가고 있다”며 “모인 기부금이 9월이면 3000만 원에 이르러 다시 1명의 여성가장에게 창업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희망가게’ 1호점에서 시작된 ‘희망의 빛’은 이렇게 돌고 돈다.
“창업자금으로 지원받은 3000만 원을 모두 갚으려면 7년은 더 걸리겠지만 그 돈이 결국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가장의 희망을 키우는 곳에 가게 되는 거잖아요. 빨리 자리 잡아서 내가 받은 ‘희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주고 싶어요.”(김 씨)
나눔의 터전 희망가게 창업 현황 | |||
호점 | 업종 | 창업일 | 위치 |
1 | 한식당 | 2004년 7월 | 서울 종로구 가회동 |
2 | 한식당 | 2004년 11월 | 서울 노원구 중계동 |
3 | 미용실 | 2005년 4월 | 서울 용산구 도원동 |
4 | 파견 | 2005년 5월 | 서울 광진구 구의동 |
5 | 매점 | 2005년 3월 | 서울 동대문 신발상가 내 |
6 | 미용실 | 2005년 10월 |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
7 | 피자가게 | 2005년 11월 | 서울 동작구 사당동 |
8 | 개인택시 | 2006년 3월 | |
9 | 재활용 업체 | 2006년 4월 | 경기 화성시 |
10 | 한식당 | 2006년 5월 | 서울 마포구 용강동 |
11 | 분식집 | 2006년 6월 | 서울 중랑구 면목동 |
12 | 자동차 수리점 | 2007년 2월 | 서울 중구 신당동 |
2007년 2월 현재. |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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