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페서의 계절]<4>현 정부와 손잡은 사람들

  • 입력 2007년 3월 17일 03시 00분


2002년 1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내정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한 뒤 첫 전체회의를 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002년 1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내정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한 뒤 첫 전체회의를 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병준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은 지난해 8월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임명된 지 보름여 만에 낙마했다. 논문 표절 의혹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물러났으나 그는 여전히 폴리페서들에게는 ‘꿈’과도 같은 존재다.

국민대 교수로 노무현 대선후보의 정책자문단장을 맡았던 김 위원장은 대통령정책실장·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교육부총리 등 각종 요직을 거쳤고, 현 정부 초중반의 굵직한 정책엔 거의 다 영향을 미쳤다. 논문 표절 의혹으로 교육부총리 자리에서 낙마한 뒤에도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으로 ‘컴백’했다.

○ 대부분 당시 자문교수단 팀장급

김 위원장뿐 아니라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를 도왔던 폴리페서의 상당수가 현 정부에 참여해 각종 정책을 주도했다.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의 자문교수단은 소장학자 100여 명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국민대 김병준 교수가 단장을 맡았다. 자문단에서는 고려대 윤성식 임혁백, 연세대 문정인, 서울대 김용익, 한림대 성경륭, 한국개발연구원(KDI) 유종일, 성공회대 정해구, 상지대 서동만, 계명대 이종오 교수 등이 팀장급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현 정부에서 장관과 대통령 자문위원장, 국회의원 등 정관계 고위직에 올랐다. 특히 인수위원인 교수 출신 13명 중 12명은 공직에 진출했다.

공직에 진출한 인수위원 중 부처 장관이 5명, 장관급 예우를 받는 대통령 자문위원장이 5명, 국회의원이 1명 나왔다. 고려대 윤성식 교수는 감사원장 후보가 됐으나 국회 인준을 받지 못했다. 인수위원이었으나 공직에 진출하지 않은 박부권 동국대 교수는 후보 캠프와 별 인연이 없었다.

김용익 교수는 유력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였으나 최종 낙점되지 못했으며, 이후 대통령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 됐다.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는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을 거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됐으며, 경제2분과 자문위원이던 서울시립대 신봉호 교수는 대통령정책조정비서관으로 일했다.

○ 폴리페서 평가 기준

이들 폴리페서에 대한 평가는 평가 주체와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본보 취재에 응한 교수들은 대체로 폴리페서의 성패(成敗)는 다음 4가지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①학문적 소신·철학과 일치하는 대선후보의 캠프나 정당에 참여했는가 ②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동안 자신의 소신·철학을 유지했는가 ③자신의 소신·철학을 실제 정책에 반영했는가 ④그 정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등이다.

김 위원장의 경우 ①, ②, ③번의 측면에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주도한 부동산 정책이 오히려 현 정부에서 집값 폭등의 역효과를 불러오는 등 ④번 측면에서는 실패한 폴리페서라는 게 대다수 학자들의 평가다.

김 위원장과 비슷한 경우가 조기숙 전 수석이다. 조 전 수석은 노 대통령의 언론관을 증폭해 ‘설파’하면서 결국 정부와 언론 간의 긴장관계만 강화했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④번의 관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다.

경북대 교수 출신 이정우 전 대통령정책실장은 ③번을 이루지 못한 경우다. 그는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자신의 학문적 철학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와대를 떠나 정부에 맹공을 가하고 있다.

인하대 교수 출신인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은 당초 경제계의 우려와 달리 장관 재직 시절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정책을 펴 노동계와 강하게 대립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 쪽에서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경제계와 관계, 보수 학계에서는 소신과 원칙을 지킨 장관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김 전 장관 재직 시 노동부는 국무조정실이 매년 발표하는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교수 출신 장관 재직 부처가 ‘우수’ 평가를 받은 유일한 경우다.

반면 인수위 경제2분과위원을 맡았던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대통령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있으면서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등의 일로 물의를 빚어 불명예 퇴진했다가 최근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에 위촉됐다.

○ 공직 거친 뒤 선거 출마

대선 때 노 후보를 도왔던 일부 교수는 공직을 거친 뒤 선거에 출마해 정계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노 후보의 싱크탱크였던 대구사회연구소 이사를 맡아 노 대통령과 인연이 닿은 것으로 알려진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는 부총리 직에서 물러난 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구 수성을 지역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영남대 교수로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구시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도 장관 직에서 물러난 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대선 때 정책자문단 간사를 맡았던 고려대 조재희 연구교수는 대통령정책관리비서관을 거쳐 지난해 서울 성북을 7·26 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대선 당시 노 후보를 가까운 거리에서 도왔으나 현 정부 공직에는 참여하지 않은 교수도 있다. KDI 유종일 교수는 노 후보의 경제정책 참모였으나 현 정부에서는 1년가량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지냈을 뿐 다른 공직을 맡지 않았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교수 출신 인수위원 중 유일하게 공직 안 맡은 박부권 교수▼

“폴리페서들이 본분인 교육과 연구를 등한시한다면 나라를 위해서도 그 자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한 교수 출신 위원 중 유일하게 현 정부에서 공직에 진출하지 않은 동국대 박부권(교육학·사진) 교수는 16일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는 “교수의 정치 참여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사회 움직임이 정치와 연관되는 게 있으니 조언도 하고,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서 하는 건 좋다고 본다”면서도 “자기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그런 자리만 다니는 교수들이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수위원이면서도 왜 공직에 진출하지 않았나.

“안 한 게 아니고 못한 것이다(웃음). 능력과 자질이 있어야지, 아무나 공직을 할 수 있나. 나는 원래 2003년이 안식년으로, 미국 위스콘신대에 가서 공부를 하게 돼 있었다. 나는 다른 위원들과 달리 후보 캠프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공직을 권유하며 붙잡는 사람은 없었나.

“내가 떠난 걸 섭섭하게 생각한 분이 있을지도 모르고, 친구 중에 무책임하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도 보직 교수를 10년 정도 해 탈진 상태였고, 교수 경력 관점에서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인수위에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교수는 없었나.

“멀쩡한 사람들이 와서 요청을 하는데 이상하더라. 사회적으로 지명도도 높은 사람들인데, 의외였다. 인수위 기간 중 5, 6명 있었던 것 같다. 대학 총장도 한 명 있었다. 어떤 분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만나면 할 이야기도 없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바로잡습니다]3월 17일자 A4면

△3월 17일자 A4면 ‘교수 출신 인수위원 13명 중 12명 공직 진출’ 기사에서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는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이라고 했으나 조 교수는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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