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같은 풍산고 선생님들 덕분에 마음이 놓이네요"

  • 입력 2007년 3월 18일 17시 20분


17일 풍산고를 찾은 전국의 학부모들이 윤영동 교장을 비롯한 교사, 학생들과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폐교위기에 놓였던 풍산고는 교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수도권 학생들도 목표로 하는 좋은 학교로 대변신했다. 안동=이권효기자
17일 풍산고를 찾은 전국의 학부모들이 윤영동 교장을 비롯한 교사, 학생들과 한자리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폐교위기에 놓였던 풍산고는 교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수도권 학생들도 목표로 하는 좋은 학교로 대변신했다. 안동=이권효기자
폐교위기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경북 안동 풍산고 윤영동(왼쪽 세번째) 교장과 교사, 학생들. 경북학생들도 입학을 꺼리던 학교가 수도권 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좋은 학교로 대변신했다. 안동=이권효기자
폐교위기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경북 안동 풍산고 윤영동(왼쪽 세번째) 교장과 교사, 학생들. 경북학생들도 입학을 꺼리던 학교가 수도권 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좋은 학교로 대변신했다. 안동=이권효기자
"부모도 이처럼 세심하게 아이들을 지도하지 못할 겁니다. 정말 만족스러워요."

서울 광진구 노유동에 사는 주부 정귀녀(42) 씨는 올해 2월 서울 신양중을 졸업한 아들 이현성(17) 군을 경북 안동시 풍산읍 안교리에 있는 풍산고에 입학시켰다.

17일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풍산고를 찾았던 정 씨 등 전국 곳곳에서 모인 학부모 66명은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으니 정말 마음이 놓인다"며 "3년 동안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풍산고는 5년 전만 해도 농촌의 많은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생 수가 줄면서 폐교를 기다려야 하는 위기 상황에 놓였다. 1968년 풍산상업고로 개교한 이후 한 때 전교생이 800여 명에 이르렀으나 농촌인구 감소로 300명 선으로 뚝 떨어졌다.

"이대로 학교 문을 닫는 게 아닐까" 하는 낙담이 가득했던 2001년 어느 날 30여 명의 교사들은 머리를 맞댔다.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자율형 학교로 바꿔 벼랑 끝에 몰려있는 학교를 살려내자는 데에 뜻을 모았다.

2002년 6월 자율형 사립학교로 승인을 받자 교사들은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자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원서만 내면 입학하던 학교가 중학교 졸업 성적 상위 30% 이내 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고 했으니 안동지역에서는 제 정신이냐고 하더군요. 도시지역에선 그런 시골학교에 왜 보내느냐고 외면했어요."

자율학교 전환에 앞장섰던 이준설(47·영어) 부장교사는 "열심히 하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이젠 뿌듯하다"며 이같이 회고했다.

교사들이 의기투합하자 재단(이사장 유진·㈜풍산 회장)도 움직였다. 전교생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를 새로 짓고 교실 인테리어를 다시 단장하는 등 학교시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장학금을 크게 늘렸다. 우수학생 해외어학연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먼지가 풀풀 날리던 운동장이 잔디구장으로 바뀌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입학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 65명을 모집한 2003년 입학생은 경북지역 학생이 62명이었고 서울 경기 대구에서 온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2004년 서울에서 3명이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외지 학생들이 늘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서울 학생이 19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경기 출신이 17명, 대구 출신이 15명 순이었다. 경북 학생은 9명에 그쳤다. 늘 신입생이 미달이었던 현실이 5년 만에 대역전된 것.

입학생의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올해부터 지원자격을 중학교 성적 상위 20% 이내로 대폭 강화했지만 서울 15개 중학교 등 전국의 80개 중학교에서 197명이 지원했으며, 합격선은 상위 12%선을 기록했다.

대학 진학 성적도 해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 올해 2월 졸업생 84명중 고려대 법대 1명과 연세대 경영학과 1명 등 28명(52%)이 서울지역 대학에 입학했으며, 경북대와 부산대 등 전국의 국립대에 32%가 입학하는 등 97%가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교과공부뿐 아니라 전교생은 주 3회 씩 검도와 요가, 골프, 수영 등으로 체력을 다진다. 학교 주변에는 입시학원이 전혀 없어 학교에서 모든 교육을 맡는다. 주말에는 대학교수들을 초빙해 수준 높은 논술강좌까지 마련한다.

재단은 2005년 교장 공모를 거쳐 경북도교육청 교육국장 출신인 윤영동(65) 씨를 교장으로 임용했다. 대구에 집이 있는 윤 교장은 학교 옆 사택에서 아침부터 자정까지 거의 모든 생활을 학생들과 함께 한다. 그는 "전국에서 귀한 자녀를 보내준 학부모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학생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게 모든 교직원의 마음가짐"이라며 "풍산고에서 3년을 보낸 시간이 삶에서 귀중한 과정이 되도록 학생들을 껴안겠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돌아가면서 교무실을 지킨다. 학생들이 공부하다 막히면 '119' 역할도 하고,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학부모들의 전화를 받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존중받으며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는 학교라는 느낌이 듭니다.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떨어져 있어도 부모같은 선생님들 덕분에 마음이 놓이네요."

연년생 아들과 딸을 한꺼번에 풍산고에 보낸 학부모 김윤정(45·충남 계룡시 두마면) 씨의 말이다.

안동=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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