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글쓰기 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가(1)

  • 입력 2007년 3월 20일 03시 01분


논술교육에서 읽기와 쓰기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요약하기-논평하기-논술하기’의 세 단계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논술 학습에 왜 유용한 것일까요?

대입 논술은 대학 수업을 받고 공부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평가합니다. 대학 공부는 전공 서적을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분석적 이해 능력’이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도표나 그래프를 이해하는 능력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해한 내용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대학 공부답지 않습니다. 대학 공부는 글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취사선택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비판적 평가 능력’이지요.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안 됩니다. 필요할 경우 문제 해결을 위해 내 생각을 적용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창의적 적용 능력’은 제일 중요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논리적 서술 능력’이 필요합니다. ‘분석적 이해-비판적 평가-창의적 적용’의 과정은 다른 사람과 서로 생각을 나눌 때 더욱 성공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공부를 위해 이런 능력들이 필요하다 보니, 대입 논술에서 묻는 문제들도 이런 능력을 측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게 됐습니다. △제시문을 분석적으로 이해하기 △비판적으로 평가하기 △창의적으로 적용하기의 사고 과정을 단계적으로 서술하게 하는 구성이 일반화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통합교과형 논술 문항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 사례를 예로 들어 봅시다.

먼저 얼마 전에 실시한 서울대 모의논술 고사 문제 중 한 문항을 보겠습니다. 이 문항은 세 개의 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논제 1> 위의 세 제시문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시오. (200자 이내)

<논제 2> 각 제시문의 핵심적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시오. (600자 이내)

<논제 3> 위의 논의를 토대로 정보화 시대의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구상해 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기술하시오. (800자 이내)

세 논제는 각각 어떤 내용을 평가하는 문제일까요? <논제 1>은 제시문의 공통내용을 분석하여 요약하는 문항입니다. 바로 분석적 이해 능력을 평가합니다. <논제 2>는 각 제시문의 핵심 주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문항입니다. 평가 결과를 반론 제시란 형식으로 서술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논제 3>은 비판적으로 검토한 내용을 주어진 과제에 적용하여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합니다. 창의적 적용이 문항의 핵심입니다. 결국 분석적 이해-비판적 평가-창의적 적용의 세 단계로 문항이 구성되어 있는 셈입니다.

얼마 전에 시행했던 연세대 예시 문제도 유사합니다. 한 문항만 보겠습니다.

<논제 1> 제시문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이 문제에 대해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는 각각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비교하시오.(배점; 30점)

<논제 2> 서로 다른 방식의 인간관계를 제시한 제시문(나), 제시문(다) 가운데 본인은 어떤 방식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히시오.(배점; 35점)

<논제 3> 제시문(나), 제시문(다)를 참조하여 제시문 (라)의 두 표에 나타난 한국사회의 특징과 변화를 해석하시오.(배점; 35점)

이 문제의 경우 세 논제는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논제 1>은 제시문 (가)-(다)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는 문제입니다. (가)에서는 제기된 문제가 무엇인지를, (나)와 (다)에서는 제시하는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제시문 분석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분석적 이해 능력을 평가하는 문항입니다. <논제 2>는 (나), (다)가 제시한 해결책을 서로 비교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요구합니다. 비판적 평가 능력이 핵심입니다. <논제 3>은 겉보기에는 (라)의 두 표를 해석하는 문제이지만, (나), (다)가 제시한 내용을 적용하여 해석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창의적 적용 능력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역시 분석적 이해-비판적 평가-창의적 적용의 세 단계로 문항이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 단계로 논술 문항이 구성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은 아닙니다. 이전의 논술고사에서도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유사한 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른바 ‘고전 논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텍스트를 지문으로 주고, 우선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을 평가한 다음,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오늘날의 문제 해결에 적용하게 하는 것이 전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통합교과형 논술은 지문의 성격이 더 다양해지고, 교과와의 관련성이 전체적으로 더 강화되었으며, 한 논제로 결합되었던 것을 나누어 묻는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이제 ‘요약하기-논평하기-논술하기’의 단계별 접근이 왜 통합교과형 논술 대비에 효과적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을 통해 분석적 이해 능력을, 논평을 통해 비판적 평가 능력을, 좁은 의미의 논술을 통해 창의적 적용 능력을 단계적으로 배양하면서 각 단계에서 그에 맞는 논리적 서술 능력을 함께 훈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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