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이란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용기’를 가리키기도 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나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기도 하니까요. 오늘은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로서의 ‘그릇’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아침 여러분의 더운 밥을 담았던 밥그릇부터 출발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밥그릇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나요. 누가 가져가진 않을지 늘 걱정되는 값비싼 그릇이었나요, 아니면 소박하고 은은한 질그릇이었나요, 그것도 아니면 아무리 던져도 깨지지 않는 쇠그릇이었나요. 저는 오늘 농부 아저씨들이 일년 내내 땀흘려 가며 마련해 준 고운 쌀을 자칫하면 깨지고 마는 사기그릇에 담아 먹었습니다. 아슬아슬 했지만 밥맛은 참 구수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밥그릇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그릇도 있고요, 반찬그릇도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술을 담는 술그릇도 있고요, 차(茶)를 담는 찻그릇도 있습니다. 그리고 ‘색다른 것’을 담는 그릇도 있답니다.
자, 이제는 퀴즈를 내볼 게요. 색다른 것을 담는 그릇인 ‘이것’은 두 글자로 이루어진 낱말입니다. 밥그릇이 밥을 담고 있는 것처럼, 이것은 색다른 것을 담고 있습니다. 밥은 먹을 수 있지만, 이것에 담긴 것은 먹을 수 없습니다. 아니, 먹을 수는 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대부분 먹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물론 이것에 담긴 것을 먹는다고 죽지는 않습니다.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 씨는 이 색다른 것을 먹었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살아 계십니다. 사실 이것에 담긴 것은 새 생명을 기르는 데 곧잘 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인지 눈치 챘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얼마간의 도움말을 더 드리겠습니다. 이것에 담기는 것은, 고체가 아니라 액체입니다. 색깔은 경우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 지독한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담기는 색다른 것은, 처음에는 따뜻합니다. 또한 우리 몸에서 이 색다른 것이 빠져나가면, 온몸이 오싹해지곤 합니다. 여러분, 색다른 것을 담을 수 있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이것’은 방에 두고서, 소변을 볼 때 사용하던 그릇인 요강입니다. 몇몇 집이 공동으로 화장실을 사용하던 그때, 밤이 되면 온 마을이 캄캄해지던 그때에 우리 조상들은 방안에 있는 요강에다가 소변을 봤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여러분이 깜짝 놀랄만한 이상한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너무 잘 살아서 그런지 황금으로 요강을 씁니다. 황금을 주인처럼 ‘모시며’ 사는 사람도 많은데 놀라운 일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노예를 묶는 사슬과 무거운 족쇄(足鎖)도 황금으로 만듭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할 때도 황금을 씁니다. 예를 들어 아주 잘못된 행동을 했거나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온몸에 황금을 달고 있어야 합니다. 범죄자들은 손에 금반지를 끼고, 목에는 금으로 만든 사슬을 두르고, 심지어는 금으로 만든 머리띠마저 매고 있어야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이 나라 사람들은 황금 따위의 보석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보석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가끔 바닷가에서 진주를 줍고,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다이아몬드를 줍기도 하지만 일부러 그런 보석을 찾으러 다니진 않습니다. 어쩌다가 다이아몬드를 줍게 되면, 그걸 잘 갈고 닦아서 아이들에게 줍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 잠깐 동안만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놀 뿐, 조금만 자라면 다이아몬드를 내팽개쳐 버립니다. 이 나라에서 보석을 좋아하는 것은 ‘유치하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지요. 이쯤 해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황금으로 요강과 족쇄를 만드는 나라,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노는 이런 나라에 살고 싶습니까.
이 나라의 이름은 ‘유토피아(Utopia)’,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란 뜻으로 이상향을 말합니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쓴 동명의 소설에 등장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려다가 결국 단두대에서 삶을 마친 토머스 모어가 이야기한 ‘천국 같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가 이야기한 세상이 진짜 천국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시간의 벽을 뛰어넘은 책, ‘유토피아’를 읽고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에 꼭 한번 다녀오기 바랍니다.
황성규 학림 필로소피 논술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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