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전남 여수산업단지 내 모 대기업 생산직 사원인 김모(38) 씨는 주말이면 사택 인근 소호요트경기장에서 사내 동호회원들과 윈드서핑, 수상스키를 즐긴다.
동호인 38명 가운데 김 씨처럼 생산직 사원은 18명. 10년차로 연봉이 6500만 원인 김 씨는 “골프 열기도 여전해 요즘은 교대근무를 끝낸 근로자들이 조를 짜서 평일 라운드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11시경 울산 남구의 한 골프연습장.
50개에 가까운 2개 층의 타석은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타석을 차지한 사람은 대부분 주부. 남편이 울산공단 내 ㈜SK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한다는 한 주부(43)는 “남편 직장 동료들과 부부동반으로 한 달에 두세 번 필드에 나간다”고 말했다.
남편이 대학을 졸업하고 공채로 공무원이 돼 현재 6급(주사)으로 울산시청에 근무 중인 주부 김모(43) 씨.
“수영장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주부가 ‘남편이 현대자동차 생산직에 있는데 중학생 초등학생 자매를 이번 겨울방학 때 한 달간 캐나다로 어학연수 보냈고 가족끼리 스키장에도 몇 번 다녀왔다’고 말하더군요. 주눅이 들었어요.”
남편 월급으로 두 아들 학원비 대기도 빠듯한 김 씨는 ‘남편도 대기업 생산직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2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는 이치호(50) 씨는 2005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딸 유정(17) 양의 진로를 놓고 고민했다. 유정 양의 성적은 외국어고나 특목고에 지원해도 될 정도의 최상위권. 하지만 이 씨는 공부 잘하는 딸에게 “어중간하게 대학 나와 아무 특기나 기술도 없이 사무직으로 일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인문계 고교 진학을 말렸다.
이 씨는 유망하다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교장 교감과 일선 교사들을 만나 나름대로 ‘정보수집’을 한 뒤 학교를 골랐다. 현재 유정 양은 선린인터넷고 정보통신과 2학년에 다니고 있다.
‘공부를 못하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찍 돈벌이를 하기 위해 가는 학교’로 통하던 실업계 고교 중 일부는 요즘 ‘웬만큼 공부 잘해서는 가기 힘든, 어릴 때부터 전문성을 키워 주는 학교’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정 양이 다니는 선린인터넷고는 2000년경까지만 하더라도 성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였지만 2006년의 입학 커트라인은 중학교 내신 20% 이내였고, 올해에는 학과에 따라 13∼18%로 높아졌다.
한 반의 정원이 40명이라면 5∼7등은 해야 이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세청이 지난달 발표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05년도 근로소득세를 분석한 결과 울산의 근로자 1인당 연봉이 4234만 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여천과 광양공단이 있는 전남이 3856만 원으로 2위였다. 화이트칼라가 많은 서울은 3846만 원으로 3위에 그쳤다. 전국 평균은 3663만 원.
울산과 전남이 나란히 ‘근로자 1인당 연봉’ 1, 2위 도시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에 있는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들의 고소득 때문이다.
흰 와이셔츠를 입고 펜대를 잡는 사무직과 비교해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생산직을 가리키는 말인 ‘블루칼라’.
그러나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기술과 정신능력의 융합이 강조되면서 화이트칼라는 이제 블루칼라 앞에서 빛이 바래고 있다.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려는 취업 준비생, 대학 진학보다는 대학 졸업 후 어떤 생존기술을 갖고 살아갈지를 궁리하는 청소년 중 눈 밝은 이들은 블루칼라의 미래에 주목한다.
그들의 꿈은 블루칼라를 넘어 ‘대체하기 쉽지 않은 확실한 기술’을 가진 ‘로열(royal) 블루칼라’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여수=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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