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소장 ‘등’자 빼라”

  • 입력 2007년 3월 27일 02시 56분


법원 “다른 혐의 없는데도 삽입… 피고인에 불리” 잇단 제동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할 때 법원에 제출하는 공소장에 피의자의 혐의를 ‘○○ 등(等)’으로 적는 관행에 재판부가 제동을 거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공소사실이 명확하지 않고 이 때문에 피의자가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 423호실에서는 외환카드 인수 과정에서 허위 감자(감資)설을 퍼뜨려 주가를 조작한 혐의(증권거래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론스타코리아 대표 유회원 씨에 대한 1심 첫 공판이 열렸다.

공판이 시작되자 검사는 주가 조작과 법인세 포탈, 국회 증인 출석 거부 등 유 씨에 대한 기소 요지를 진술했다. 검사의 진술이 끝나자 재판부는 “유 씨의 여섯 번째 공소사실을 업무상 배임 ‘등’이라고 말했는데 그러면 여섯 번째 공소사실에 업무상 배임 외에 다른 혐의가 더 있다는 뜻이냐”고 검사에게 물었다.

재판장은 “사소하다고 볼 수 있지만 중요한 문제”라며 “사건이 복잡하고 공방이 예상되는 재판인 만큼 이 부분을 분명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검사가 “그 부분에 다른 혐의가 더 있는 것은 아니다”고 하자 재판부는 “그러면 공소장을 정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일은 15일 열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도 있었다. 공판조서 임의 변경 논란을 빚었던 이 사건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5부는 이날 “검찰은 지난 기일 때 의견서를 통해 실권 이후 이사의 의무 6가지를 설명하면서 이런 내용이 이미 공소사실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는데 공소장에는 ‘등’으로 적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격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할 검찰이 공소사실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피고인이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며 공소장 변경 의사를 검찰 측에 물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이동근 공보판사는 “재판부가 공소장의 ‘등’을 문제 삼는 것은 공소사실을 좀 더 명확히 해 논란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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