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에서 중요한 점은 잘 골라내는 것입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남길 것만 잘 남겨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요약은 사진보다는 지도를 축소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책상만 한 사진을 카드 크기로 축소할 경우 큰 사진에 들어 있던 내용은 어떻게 될까요? 그 내용이 엽서 크기의 사진에 빠짐없이 다 들어갑니다. 단지 크기만 작아질 뿐입니다. 그러나 지도의 경우는 다릅니다. 5000분의 1 지도를 5만분의 1 지도로 축소하면 어떻게 될까요? 5000분의 1일 때에는 뒷동산의 오솔길이나 마을 뒷골목이 다 표시되지만, 5만분의 1이 되면 오솔길이나 뒷골목은 사라지고 큰 길만 남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의 경우 핵심 내용만 남겨야 합니다. 결국 요약을 잘하는 사람은 글을 제대로 이해하여 핵심 내용만 간추릴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때 핵심 내용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글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소설처럼 스토리가 있을 때에는 세밀한 부분보다는 전체 줄거리를 잘 잡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논술에서는 주장과 근거가 담겨 있는 논증적 글을 요약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는 논증의 핵심 요소가 중요하며 글의 논리적 뼈대를 잘 골라내야 합니다. 글의 논리적 뼈대를 보여 주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우선 저자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 문제에 대해 저자가 주장하는 ‘결론’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렇게 <문제-결론-근거>를 찾아내 잘 정리하면 좋은 요약문이 됩니다. 실제 요약문에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굳이 밝힐 필요 없이 결론과 근거만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찾아야 그에 대한 결론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글이 다루는 문제를 찾는 문항은 자주 출제됩니다. 여러 지문을 주고 공통주제를 찾게 하는 문항이 특히 즐겨 출제되고 있습니다.
논증적 글을 요약할 때 평면적 요약을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 문단의 핵심 문장, 핵심 내용을 찾아내 그것들을 그냥 연결하면 요약문이 만들어진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각 문단이 같은 비중과 중요성을 가질 경우 이런 방식은 타당합니다. 또한 스토리가 있는 글에서 전체 줄거리를 요약할 경우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증적 글에서는 각 문단이 거의 같은 비중을 가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의 논리적 뼈대가 들어 있는 부분만 골라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성된 글이 있다고 합시다.
문단1(도입: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문단2(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내용 설명)-문단3(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도입을 주장)-문단4(도입의 이유 제시: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 향상)-문단5(교육의 질 향상에 대한 부연 설명: 사례 제시)
이 글을 요약할 경우 문단3과 문단4만 의미 있습니다. 문단 3에는 문제와 결론, 문단 4에는 근거가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문단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글을 분석적으로 이해할 때에는 <문제-결론-근거>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필요한 ‘정보’를 분석하여 정리해야 합니다. 또는 글을 쓴 목적이 무엇인지, 저자가 전제하는 관점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글이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야 할 때도 많습니다. 함축이란 숨은 결론, 드러나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주장, 글의 속뜻을 말합니다. 함축 파악을 요구하는 문제도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다음 제시문을 참고하여 통계 자료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논술하시오.(2001 가톨릭대)
제시문 <가>, <나>, <다>는 현대 사회에 나타난 소비 현상과 관련된 글이다. 각각의 제시문에 함축된 내용을 모두 반영하여 소비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설명하고 현대사회의 소비의 특성에 대해 논술하시오.(2003 고려대)
제시문 <라>에서 예견된 “지적 재앙”이란 말이 어떤 함축을 담을 수 있는지를 제시문 <다>를 참고하여 논하라.(2007 서강대 예시문제)
일반적으로 함축을 파악하는 것은 주장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합니다. 누군가 “신의 것은 신에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라고 했다고 합시다. 이 말은 단순히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맥락에 따라서 전혀 다른 함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의 것과 황제의 것이 잘 나뉘어 있는 상황이라면 현실을 긍정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황제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온 말이라면 의미는 달라집니다. 그때에는 황제가 부당하게 신의 것을 차지하고 있으니 황제의 것 중 일부를 빼앗아야 한다는 함축을 가지게 되어 현실을 부정하고 황제에게 저항하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함축 파악은 글의 진정한 의미를 읽기 위해 중요한 문제입니다. 글의 속뜻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글 읽기의 재미가 무엇인지 절감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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