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찍은 이 테이프는 40년 넘게 서랍 속에 잠자고 있다가 미국 댈러스의 ‘6층 박물관’에 기증되면서 알려졌다. 이 박물관은 범인인 리 하비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저격한 곳이다.
○ ‘케네디 저격’ 제2암살자 의혹 또 떠올라
이 사진이 공개되면서 미국에서는 케네디 암살에 제 2의 암살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다시금 떠올랐다. 1969년 7월 16일,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그러나 달에 꽂아둔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중계 장면이 문제가 됐다. 대기가 없는 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달 착륙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했음을 생생히 보여주기 위해 미국 정부가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러나 육 여사가 정체불명의 경호원 총에 맞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사건의 배후를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1997년 8월 31일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는 파파라치(유명 인사를 쫓아다니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를 피하려다 자동차 충돌사고로 비명횡사했다. 그러나 영국 황실이 그녀의 죽음에 개입했을지 모른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사건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고 보는 시각을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라 한다.
음모이론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정치적 권력이나 집단이 아니라 대중이 전혀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라고 전제한다.
사람들이 음모이론에 현혹되는 까닭은 복잡한 쟁점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발생하건 그 뒤에 거대한 힘이 개입되어 있다고 믿으면 복잡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3년 영국 런던대의 패트릭 레만 교수가 영국 심리학회에 발표한 음모이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 저변에는 파급효과가 큰 사건일수록 그 원인도 거창할 것이라고 믿는 성향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레만 박사는 대학생 64명에게 신문에서 잘라낸 것처럼 보이는 기사를 제시했다.
○ 대중들 음모이론에 쉽게 현혹
물론 이 기사는 가짜로 만든 것이었다. 가상 국가의 대통령에 관해 4 종류로 꾸민 기사였다.
첫 번째 기사는 대통령이 총을 맞아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기사는 대통령이 피격되지만 목숨을 건진 것으로, 세 번째 기사는 총알이 대통령을 빗나갔으나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피격 직후 죽는 것으로, 네 번째 기사는 총알이 빗나가 대통령이 살아남는 것으로 작성되었다.
레만 박사는 이러한 신문기사를 읽고 암살범이 단독범행인지 아니면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는데, 대부분 저격수 뒤에 어떤 세력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주요 사건에 거대한 원인이 숨어있다고 믿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음모이론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독재자들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갖가지 음모를 꾸며냈다.
그러나 16세기 이탈리아 정치가인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가 ‘군주론’에서 설파한 바와 같이 음모가 성공한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상대방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한 폭로전이 전개되면 인터넷을 통해 갖가지 음모이론이 기승을 부릴 것임에 틀림없다.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