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고속도로를 따라 대구 쪽으로 가다 창녕나들목을 벗어나 합천 방향으로 20여 분을 더 달렸다. 들이 넓고 기름지다고 해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옥야(沃野)로 불렸던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리. 학원도 오락실 간판도 보이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은 옥야고다.
1967년 상업고등학교로 출발한 이 학교는 2004년 전국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는 ‘자율학교’가 되면서 전국에서 학생들이 찾아오는 ‘숨은 명문’으로 탈바꿈했다. 2007년 4개 학급 입학생 120명 가운데 45명만이 창녕군 출신이다.
○ 교사보다 기숙사가 더 큰 학교
옥야고에선 수업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수업에 열중하다 보면 끝나는 시간이 약간 늦어질 수도 있고, 다들 제대로 이해했다 싶으면 수업을 빨리 끝마칠 수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굳이 종을 치지 않아요.”
영어 담당 윤종민(40) 교사의 설명이다.
교사(校舍)는 2층짜리 건물 한 동이지만 기숙사는 3층짜리 건물 3개 동이다. 재학생 334명 가운데 297명이 기숙사에서 지낸다. 기숙사 생활은 옥야고 학생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이 학교 학생들은 ‘학원 수강’을 모른다. 그 대신 매일 오후 6시부터 29명의 교사에게 자신의 수준에 맞춰 ‘방과 후 수준별 학습’을 받는다. 이 학교 교사들은 주말에는 원하는 학생에게 논술을 가르친다. 오전 2시까지는 심야학습 시간이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선후배들이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로가 스승과 제자가 된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03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입학생이 나왔다. 2005년에는 서울대에 2명이 진학한 것을 비롯해 인문계 3개 학급 졸업생 103명 전원이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2007년에는 서울대와 고려대 등 서울 지역 대학에 20여 명이 진학했다.
○ “선생님만 믿고 따라가면 돼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에는 교사들이 학부모의 처지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했죠.”(하 교장)
교사 11명은 여학생 기숙사를 늘리기 위해 30평형 빌라 관사를 비워 줬다. 학교 측은 2005년 교사 1인당 200만 원씩을 지원해 직접 교재를 만들도록 했다.
지방자치단체도 거들었다. 창녕군은 2003년부터 4년간 시설비 8억 원을 지원했다. 2005년부터는 장학금을 매년 4000여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학부모는 매분기 등록금 28만 원, 월 7만 원인 기숙사 관리비, 매끼 2300원꼴인 식비를 부담한다.
지난해 아들을 이 학교에 보낸 학부모 장재석(49·경남 함안군 칠원면) 씨는 “아들의 성적이 조금씩 오르고 있고 사교육비 걱정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공부 비법은 ‘학교와 선생님을 확실하게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서울에선 ‘학원 없이는 공부 못 한다’고 하지만 여기선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해요.”
서울 강남구 대치중을 졸업하고 옥야고에 진학한 2학년 노효주(16) 양의 얘기다.
창녕=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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