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용 이대총장, 본보창간 10주년 때 받은 장롱 기증

  • 입력 2007년 3월 30일 02시 59분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과 남편 안기정 씨가 29일 본보 창간 87주년을 기념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장롱을 신문박물관에 기증하며 장롱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열린 장롱 문 안쪽에 ‘동아일보 10주년 기념 행운1등상’이라고 쓰여 있다. 이훈구 기자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과 남편 안기정 씨가 29일 본보 창간 87주년을 기념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장롱을 신문박물관에 기증하며 장롱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고 있다. 열린 장롱 문 안쪽에 ‘동아일보 10주년 기념 행운1등상’이라고 쓰여 있다. 이훈구 기자
“독자들과 함께 ‘장롱의 행운’ 나눠야죠”

“시아버님이 동아일보 창간 10주년 기념 ‘행운1등상’으로 받은 장롱은 77년 된 가보(家寶)죠. 동아일보의 87번째 생일에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장롱을 기증해 더욱 뜻 깊습니다.”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은 남편 안기정(64) 씨와 함께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로 본사 김학준 사장을 방문해 집에서 고이 간직했던 의걸이장(장롱)을 신문박물관(프레시움·PRESSEUM)에 기증했다.

본보는 1930년 창간 10주년 기념행사로 1920년 4월 1일 창간호부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신문을 보관한 독자를 대상으로 행운권을 추첨해 1등에게 경대와 장롱을 증정했다.

행운일등상의 주인공은 이 총장의 시아버지인 안명환(1971년 작고) 씨. 안 씨의 어머니가 이 상을 대신 받았다. 같은 해 본보 11월 9일자는 안 씨의 어머니가 장롱을 받는 사진을 담은 기사를 실었다.

당시 안 씨는 “수많은 독자 중에서 1등에 당첨된 것은 무엇이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창간호부터 10년을 하루같이 애독하는 동시에 한 장도 버리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모아 두었다”고 말했다.

이 장롱은 결이 곱고 단단한 고급 나무인 화류(樺榴)로 만들어졌으며 당시 여성들의 선망 대상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77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이 총장의 시할머니, 시어머니, 이 총장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자택에서 대를 이어 닦고 손질한 탓에 지금도 은은한 윤이 난다.

이 장롱 문에 붙은 거울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의 글귀가 쓰여 있어 당시의 남아 선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이 덕분인지 딸만 내리 넷을 두었던 안 씨는 아들 둘을 낳아 ‘행운의 장롱’이기도 하다.

당시 안 씨는 조선은행 계산계 직원으로 ‘주산 암산의 신’으로 불렸고 1926년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준공 이후 낙성식 기념 행사에서도 은배(銀杯)를 받은 적이 있다.

그는 15세인 1916년 전국 주산암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선교단체의 잡지(The Korean Mission Field)에 천재 소년으로 소개됐다. 이를 계기로 조선은행에 특채됐으며 광복 이후 한국은행의 초대 은행감독원장(1950∼54년)과 상업은행장(1954∼57년)을 지냈다. 이 총장의 남편도 한국은행 국장 출신이어서 2대가 ‘한국은행맨’이다.

안 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한국은행 금고에 보관된 금괴를 부산으로 이송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는 숱한 고비를 넘기면서 금괴를 부산까지 옮긴 데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안전하게 예치하는 공을 세웠다. 이 금괴는 FRB에 계속 보관돼 오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외채 상환에 사용됐다고 한다.

순흥 안씨 종가의 맏며느리인 이 총장은 1971년 시아버지가 작고한 뒤 시어머니를 20년간 극진히 모신 효부이기도 하다.

이 총장은 “시할머니가 받으신 장롱을 역사를 전공한 손자며느리가 동아일보에 기증하게 됐다”면서 “동아일보가 민족 문화인 장롱을 사은품으로 정한 것은 집안의 전통을 보존하는 임무를 맡은 여인들을 통해 민족의식과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려는 큰 뜻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기정 씨도 “할머니, 어머니가 장롱을 애지중지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당시의 생활상과 신문의 역사를 알려주는 데 일조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김학준 사장은 이 총장 부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한국 신문 100년의 역사를 조망하는 신문박물관에 소중한 유물을 기증해 준 데 감사한다”며 “장롱은 한국 근현대사를 밝히는 귀중한 자료로 신문박물관의 의의를 더욱 빛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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