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7주년]과학기술 기피… 5년 뒤면 ‘인재 대란’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지 못하면 기업과 나라의 미래에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 현장에선 연구인력이 모자라 애를 태우고 있는 형편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지 못하면 기업과 나라의 미래에 먹구름이 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 현장에선 연구인력이 모자라 애를 태우고 있는 형편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 H대의 화학과 A 교수는 지난해 여름 방학 이후 틈만 나면 중국, 인도, 베트남으로 날아간다. 현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올라가는 학생들을 한국에 데려오기 위해서다.

A 교수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자연대 화학과 16개 연구실에는 각 방에 최소 1명 이상의 동남아시아 연구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이 외국 학생들에게는 등록금 50% 감면, 기숙사 우선 제공이라는 혜택을 준다.

A 교수는 “국내 지원자가 모자라 고급 연구를 할 수 있는 박사급 연구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남아의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공대 연구실도 사정은 마찬가지. 지난해 이 대학 자연과학계열 교수와 공학계열 교수들은 중국과 동남아로 날아가 박사급 학생을 데려왔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고급 두뇌가 늘고 국내에 남은 학생은 이공계를 기피해 벌어진 기현상이다. 지방대 연구실에서 시작된 연구실 공동화 현상은 최근 수도권은 물론 서울 지역 대학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공계 교수들과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은 “과학기술 기피 현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10년, 20년 뒤는 물론이고 당장 5년 뒤 제대로 된 인력 구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토로한다.

○ 기업들, “과학기술 두뇌 부족” 호소

고급 두뇌의 부족은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올해 초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개발 인력을 지난해 수준으로 뽑겠다는 85개 회사 중 42%가 인력 부족을 느끼고 있다. 대졸 출신 인력의 자질이 부족해 재교육을 한다는 기업도 81.5%에 달했다.

이렇게 국내 중소기업이 6개월간 지출하는 사원 1인당 재교육비만 평균 1241만 원. 대학이 산업계의 요구에 맞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비용이다.

한국이 대졸 수준의 인력 확보에도 목을 매고 있는 사이 경쟁국 일본과 중국은 빠른 걸음으로 ‘우수 두뇌’를 흡수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27일 발간한 일본 정부의 ‘이노베이션25’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기술 중심 사회 건설을 목표로 2025년까지 인재 양성과 고급 두뇌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중국 역시 산업 발전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의 첨단 인력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을 봐도 마찬가지다. 2005∼2015년 정보기술(IT) 분야에 필요한 국내 연구개발 인력은 23만1000명. 그러나 이 기간에 배출될 핵심 인력인 석박사급의 공급은 16만7000명에 불과하다.

이런 고급 두뇌 부족 현상은 10∼20년 뒤가 아닌 바로 5년 뒤 인재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 처우 개선, 맞춤형 인재 육성 필요

과학기술계는 과학인재 육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주문한다.

서강대 이덕환 교수는 “평가를 제대로 못 받고 보상도 뒤따르지 않는데 누가 과학기술 전문인으로 일하고 싶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대학의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허연회 이사는 “기본적인 연구개발 외에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대학의 근본적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느껴 각종 정책을 시행하고 있긴 하다. 공대생의 자질을 높이기 위한 공학교육인증제 프로그램이 올해 137개 더 늘어난다. 과학기술부는 연구 수행 능력을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해 우수연구센터의 해외 현지연구실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 규모가 인건비 수준밖에 되지 않아 ‘실질적인’ 연구 수행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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