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 전문가들에게 한국 정치의 선진화 과제들을 들어 봤다.
○ 당-정-청 선순환 구조 정착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해 의장 시절 기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대신 기업은 투자를 늘리는 ‘뉴딜 구상’을 야심 차게 추진했다. 이 프로젝트는 각계에서 환영받았지만 한 달도 못 돼 흐지부지돼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한순간에 추진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당-정-청 간 갈등이 국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로 꼽힌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비서진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여당 위에 군림할 경우 3자 간 협력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며 “당을 존중하면서 행정부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에 충실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정당정치가 뿌리내려야
민주주의 역사가 60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정당정치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100년 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은 창당한 지 4년도 못 돼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정당들이 이념과 정체성보다는 선거와 지역구도에 따라 수시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정당정치의 틀이 잡히지 않는 것”이라며 “의원 중심으로 정당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미국처럼 의원과 자치단체장들이 전체 대의원의 20%가량을 지명해 이들을 정당 엘리트로 활동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연한 여야 관계 정립
과거 정권에서도 여야 갈등이 적지 않았지만 물밑에선 다양한 협의 채널을 통해 민감한 문제들을 조율했다.
장 교수는 “‘야합’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복잡한 국정 현안을 해결하는 데는 여야 간 물밑 협상이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며 “무너진 공식, 비공식 채널을 모두 정상화해 협의와 합의를 통한 정치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제 아래서는 제도를 통해 여야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 정당이 상대 당을 동반자로 인식하면서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 서비스하는 정치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960, 70년대 정치가 경제를 견인하던 시절과 달리 이제는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고 자율성과 역동성을 키우도록 서비스하는 기능에 치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은 정치에 요구되는 3가지 요소로 △경제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흥이 날 수 있도록 하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민간부문의 장점을 연결시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오거나이저(Organizer)’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집한 정보를 민간부문에 공급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코디네이터(Coordinator)’ 역할을 꼽았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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