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에밀 자토페크(1922∼2000)는 ‘신발을 신은 전갈’이다. ‘인간 기관차’라고도 일컬어진다. 1948년 런던올림픽 1만m, 1952년 헬싱키올림픽 5000m, 1만m,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그는 헬싱키올림픽 이전까지 단 한번도 마라톤을 완주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마라톤 우승을 한 사흘 뒤 1만m에서 다시 금메달을 따냈다. 세계신기록도 18개.
○ 육상은 인간이 맨몸으로 쓰는 서사시
육상은 ‘더 빠르게(100m, 1만m, 릴레이 등 트랙경기와 마라톤 등 도로경기)’ ‘더 멀리(포환, 원반, 해머, 창던지기와 멀리뛰기, 세단뛰기 등)’ ‘더 높이(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등)’를 꿈꾸는 인간의 몸부림이다. 맨몸으로 쓰는 서사시다.
장대높이뛰기엔 날갯짓을 향한 인간의 꿈이 담겨 있다. 수평 운동에너지가 두둥실 한순간에 수직에너지로 바뀌며 한 마리 새가 된다. 인간은 그 순간 자유와 해방을 느낀다.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은 무아지경이다. ‘중력의 법칙’에 반항하는, 저 가슴 속 끓는 피의 간지러움.
이 세상에 수평에너지를 단박에, 거의 직각으로 수직에너지로 바꾸는 생물은 지구상에 오직 장대높이뛰기 선수뿐이다. 그 수많은 종류의 새도 한 순간에 직각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새는 없다. 비행기처럼 대부분 완만한 사선을 그으며 날아오른다.
초원을 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아름답다. 천진난만하다. 맨발의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 1932∼1973)가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로 골인한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아베베는 생애 두 번째 마라톤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흑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그는 내친 김에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도 가볍게 우승했다. 이번엔 신발을 신고 달렸다.
달리기는 이제 흑인들 천하다. 단거리는 중서아프리카(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출신과, 미국 그리고 카리브 연안 흑인들이 펄펄 날고 있다. 장거리는 동부아프리카(케냐, 에티오피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이 우승을 휩쓸고 있다. 왜 흑인들은 달리기에 뛰어날까. 연구결과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최근 미국의 생물학자 빈센트 사리히는 재미있는 통계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마라토너가 나올 확률은 ‘케냐의 칼렌진 부족이 100만 명에 80명꼴이라면 그 이외 다른 국가는 인구 2000만 명에 1명 정도’라는 것이다.
결국 인구 300만 명의 케냐 칼렌진 부족에 약 240명의 잠재적인 세계적 마라토너가 있다면 한국엔 잘해야 2, 3명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어쩌면 황영조, 이봉주 2명을 이을 천재가 당분간 나오기 힘들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만에 하나 어딘가에 있다 해도 ‘사막에서 바늘 찾기’만큼 알아채기 힘들다는 뜻이다.
○ 영재들 찾아내 선진국으로 보내자
누르미 자토페크 아베베 손기정 황영조 등은 모두 달리기 천재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릴 때부터 높고 낮은 언덕의 시골길을 달리며 컸다. 산과 들을 달려 학교에 갔고, 산과 들을 달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자연 속에서 신나게 달렸고, 즐겁게 뛰어다녔다.
영재는 100점을 맞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림없다. 천재는 100점은 못 맞을지 모르지만 1000점, 1만점, 그 이상도 맞을 수 있다. 영재와 천재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47개 종목(남 24, 여 23) 중 한국이 좀 해볼 수 있는 건 현재로선 마라톤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 이봉주(37)는 마흔하나. 뛰기 힘들다. 마라톤이 이럴진대 다른 종목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한국육상은 하루빨리 천재를 찾아나서야 한다. 누르미를 찾고 자토펙을 키워야 한다. 영재들도 찾아내 부지런히 육상 선진국에 내보내야 한다. 4년은 너무 짧다.
자토페크는 말한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사람은 달린다”.
그렇다. 자벌레는 기어가고, 토끼는 뛰어가고, 꾀꼬리는 울고, 버들치는 헤엄친다. 꿈의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진돗개가 컹컹 짖고, 솔개가 훨훨 날고, 토종닭이 꼬꼬 울고, 가물치가 첨벙거리기’를 원한다. 황소개구리가 팔짝 뛰고, 배스가 헤엄치고, 블루길만이 활개 친다면 너무너무 서운할 것이다.
김화성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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