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리라인
스페인 내전 후 민중 반군과 프랑코 독재정부군의 국지전이 계속되던 1944년. 소녀 오필리아는 만삭인 어머니와 함께 정부군 장교인 새 아버지를 만나러 숲 속 전쟁터를 찾아갑니다. 바로 이때, 오필리아 앞에 기이한 벌레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벌레에 이끌려 숲 속 미로로 들어간 오필리아는 ‘판’이라는 이름의 요정을 만나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오필리아 자신이 원래는 지하왕국의 공주였으며 다시 공주가 되어 지하세계로 돌아가려면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죠.
‘용기’와 ‘인내’의 관문을 통과한 오필리아. 세 번째 ‘희생’의 관문을 통과하던 그녀는 그만 잔인무도한 새 아버지의 총에 맞습니다. 숨져 가는 오필리아의 눈앞에는 자신이 공주가 되어 지하왕국으로 귀환하는 달콤한 꿈이 펼쳐집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오필리아가 경험했던 ‘판’의 시험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필리아가 꿈꿔 온 환상, 즉 판타지(fantasy)였던 것입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여러분은 ‘판타지’ 하면 뭘 떠올리나요? 아마도 아름답고 순수하고 로맨틱하고 즐거운 어떤 걸 상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판의 미로’는 우리의 이런 생각이 지독한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해줍니다. 진정한 의미의 판타지란 늘 밝고 멋진 것만이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게 해준다면, 그것이 달콤하든 아니면 쓰디쓰든 모두 소중한 판타지가 될 수 있지요.
자, 오필리아가 경험하는 판타지를 들여다볼까요? 염소처럼 생긴 ‘판’에서부터 흉측한 두꺼비, 눈알이 손바닥에 달린 괴물에 이르기까지, 잔혹하고 무서운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이런 판타지를 거부하지 않은 채 더 깊이 판타지 속으로 몸을 담급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두렵고 무서운 판타지일지라도, 그건 어린 오필리아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탈출구이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의 극악무도한 분위기, 잔인한 새 아버지의 등장, 어머니가 숨진 뒤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 이런 공포와 불안과 외로움은 오필리아로 하여금 절망적이고 필사적으로 판타지를 갈구하게 만들었던 것이죠.
이 영화가 전쟁터의 삭막한 현실과 오필리아의 판타지를 번갈아 보여 주는 것(이를 영화 용어로는 ‘교차편집’이라고 합니다)도 같은 이유입니다. 현실이 어둡고 괴로울수록, 거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오필리아의 판타지도 그만큼 강렬해지니까요. 다시 말해, 비참한 현실은 판타지를 꽃피우는 씨앗인 것입니다.(아, 멋진 말이에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죽음이야말로 극단의 현실과 극단의 판타지가 서로 만나는 절묘한 순간입니다. 죽음이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의 순간에 오필리아가 흘리는 핏방울이 절묘하게도 지하세계라는 판타지의 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다니요.
[3] 종횡무진 생각하기
‘판의 미로’에는 중요한 상징들이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괴한 벌레는 소녀가 숲 속이란 낯선 환경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면서도 오필리아를 해방이라는 판타지 세계로 인도하는 매개물이죠.
그럼, 오필리아의 새 아버지가 지닌 회중시계는 어떨까요? 웬일인지, 대위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시계를 신줏단지처럼 모십니다. 회중시계에 숨겨진 엄청난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대위가 아들의 탄생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현상도 회중시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어요)
여러분, 오필리아는 판타지를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뛰쳐나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고통과 마주하기를 권합니다.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한 채 맞서 싸우다 보면, 어느새 성장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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