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의 어투에는 자신의 잘못을 상황 탓으로 미루려는 속셈이 그대로 드러난다. 전쟁이라는 ‘상황’ 탓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을 일본 정부가 어쩌겠느냐는 투의 ‘무대포 정신’이랄까.
일본군 위안부는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범죄가 있으면 범인도 있기 마련이다. 두목의 잘못은 아랫사람이 벌인 일이라고 변명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 보수언론들은 한발 더 나가서 ‘피장파장의 오류’까지 범했다. 미군도 전쟁 후 독일과 일본에 위안소를 설치해 운영했다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왜 나만 잡느냐?”라는 항의에 대한 경찰관의 답변은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가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도 처벌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가 될 것이다.
미국 국무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저지른 범죄에 대해 솔직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이와 잇몸처럼 친밀한 미일 관계를 생각하면 예외적으로 강한 충고인 셈이다. 정의는 항상 맞은 자의 편이다. 부당하게 때려 놓고도 변명을 일삼으면 갈수록 추해질 뿐이다.
그러나 무조건 일본을 비난하고 욕할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성폭력 통계에서 ‘세계 수위를 다투는’ 나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혹여 우리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모른 체하지는 않았는지 반성, 또 반성해야 한다. 사람은 욕하면서 닮아 간다. 일본의 뻔뻔함을 우리 안의 추한 모습을 돌아보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음)로 삼자.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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