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이자 경기북부의 유일한 화장장인 서울시립 벽제화장장. 고장에 대비한 예비용 2기를 제외하고 화장로 23기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교대로 하루 9번씩 풀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구 1000만 명이 모여 살아가는 거대도시임에도 서울 시내에는 화장장이 단 한 곳도 없다. 따라서 화장을 원하는 유족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린다. 경기북부의 수요까지 더해져 벽제화장장은 늘 포화상태다.
벽제화장장의 1일 적정처리능력 66구는 화장률이 급증한 2000년(하루 평균 70구)부터 ‘있으나마나한’ 기준이 돼버렸다. 고 최종현 SK 회장 등 유명인사들의 화장 실천이 잇따르면서 “비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자”는 화장 장려운동이 확산돼 화장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1995년 28.3%에 불과했던 서울시민의 화장률은 1999년 41.9%, 2001년 53.2%, 2003년 61.5%에 이어 지난해에는 68.6%까지 치솟았다. 10명 중 3명꼴이었던 화장률이 10년 만에 10명 중 7명꼴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박복순 서울보건대 교수 겸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은 “화장률이 99%인 일본의 전문가들조차 한국의 급속한 화장률 증가세에 놀라고 있다”며 “하지만 전국의 화장장은 모두 47개로 증가 추이가 미미하다”고 말했다.
요즘 벽제화장장의 1일 평균 화장시신 수는 무려 93구에 이른다. 이 때문에 적정수준인 화장로 1기당 2, 3구보다 두 배 많은 1기당 4, 5구씩을 무리해 가며 처리하고 있다.
최초 화장로 3기에서 출발해 15기로 증설하며 화장수요 증가에 대처해온 경기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 역시 예약이 밀려들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365일 기계를 가동하고 있다.
벽제화장장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 민경찬 장묘문화센터 소장은 “외국에서는 화장장에 와서 화장만 하는 게 아니라 고인을 기리는 의식도 치르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벽제화장장은 증설이 어렵기 때문에 늘어난 화장수요를 맞추려면 다른 곳에 화장장을 더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말 결혼식장에서 2시간 단위로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바뀌듯이, 화장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비워주고 장지로 떠나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박 교수는 “장례는 정중하고 엄숙하게 치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약하기 어렵고 시간에 쫓기는 한국의 화장장은 시신을 태우는 ‘공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처리 가능한 만큼만 예약을 접수하기 하기 위해 인터넷 선착순 예약제도가 도입된 뒤로는 고인의 사망시점이 ‘3일장을 치를 수 있느냐’를 좌우하는 변수로까지 떠올랐다. 새벽이나 오전에 사망하면 화장장 예약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사망시점이 오후거나 밤일 경우 예약이 차버려 화장장을 잡지 못한 유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오전 또는 최소한 낮 시간대에는 화장시간이 잡혀야 해저물기 전에 장례를 끝마칠 수 있는데 이 시간대 예약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4일장을 치르는 일도 빈번하다.
오전과 낮 시간에 예약을 하지 못한 유족들은 3일장 일정에 맞추기 위해 ‘원정 화장’에 나서기도 한다.
박태호 서울보건대 겸임교수는 “가까운 수원 부천 성남 등의 화장장은 물론이고 멀리 춘천 원주 청주 대전 등으로 수도권 주민들이 화장하기 위해 꽤 많이 가고 있다”며 “수도권 화장장은 이미 절대부족 상태이고 이대로 가다가는 화장대란이 닥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52.6%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매장률을 앞선 전국의 화장률이 2010년에는 70%에 이르러 화장시설 부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진작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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