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외교문서 11만9999여쪽 공개

  • 입력 2007년 4월 4일 11시 57분


1976년 미국 민주당 소속 지미 카터 후보의 대선 당선이 유력시 되면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 방향을 바꾸기 위해 총력 로비전을 펼친 사실이 드러났다.

또 박정희 정권은 미국 의회와 언론 등을 통해 통일교의 배후 지원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정부내 대책회의를 열고 통일교와의 관계 청산을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일본은 일제시대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된 한인들의 귀환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달라는 한국측의 요구에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을 보이며 거부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는 4일 제14차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생산 또는 접수한 지 30년이 지난 1976년도 문서를 중심으로 11만9000여 쪽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서에는 1976년 미국 의회의 한국관련 청문회, 사할린 동포 귀환문제, 조총련계 재일 한국인 모국방문, 비동맹 정상회의에서의 남북 외교전 등이 포함됐다.

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당선이 확실시되던 카터의 집권에 대비해 1980년까지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전술 핵무기를 계속 한반도에 배치할 수 있도록 미국을 설득한다는 대미 외교 목표를 설정했다.

특히 미국 정치인들을 상대로 금품로비를 벌인 '코리아 게이트'로 한미 관계가 얼룩졌던 1976년초 한국 정부는 미국 의원들과 활발히 접촉했다.

정부는 1976년 7월 외무부와 중앙정보부 주도로 '한반도 정세 및 한미관계'라는 보고서를 작성해 비밀리에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당선이 확실시되던 카터 진영에 전달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개인자유의 신장에 앞서 공동체적 사회정의가 우선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그해 8월 중순 조지아주 출신 사업가로 카터의 정치참모 역할을 했던 존 포프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김영선 당시 주일대사를 시켜 포프를 면담하게 하는 등 카터를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코리아 게이트가 비화하던 상황에서 함병춘 당시 주미대사는 한미관계 청문회를 앞두고 청문회가 한국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미국 의원들과 활발하게 접촉했다.

한국측이 미국 조야를 향해 전방위 로비를 펼치는 사이 미국에서는 통일교의 배후에 한국 정부가 있다는 의혹이 표출됐다.

문서에 따르면 당시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은 전직 주미 대사관 간부의 증언 등을 토대로 문선명 씨의 통역이자 주미 대사관 무관을 지냈던 박보희 씨가 대사관 외교행랑을 이용, 대통령, 외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에게 직보하는 체계를 갖고 있다고 믿고 청문회를 추진했다.

또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여러 유력 매체들은 경쟁적으로 통일교와 한국 정부의 결탁 의혹을 제기했다.

그해 5월22일자 뉴욕타임스는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문선명 씨가 한국에 M16공장(통일산업)을 건설할 때 박보희 씨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사업지원 협의를 했으며 통일교 반공 교육기관인 승공연합회에서 한국 공무원 교육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문선명·박보희 씨와 박 대통령의 다양한 인연을 소개하면서 "통일교가 독자적으로 성장한 후 한국정부가 이를 이용했거나 처음부터 한국 정보 요원에 의해 조정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처음에는 '종교문제에 정부가 논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고 이듬해부터 리틀앤젤스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는 등 통일교와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통령과 외무부장관에게 보고된 관계부처 대책회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미국측이 통일교와 한국정부의 관계를 파헤치는 것은 한국의 반체제 기독교 인사와 미국의 반한세력이 결탁해 꾸민 음모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이밖에 1976년 8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제5차 비동맹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비동맹 회원국이었던 북한의 외교공세에 맞서 세계 유력지들을 상대로 다양한 홍보전을 전개한 사실도 드러났다.

비동맹정상회담에 참석한 북한의 박성철 정무원 총리는 연설을 통해 미국이 "남한에 F-4 팬텀 폭격기에 의해 수송될 수 있는 핵폭탄 192기를 포함해 1000기 이상의 핵무기를 들여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박정희 정권은 1976년 미국 시민의 북한지역 여행제한을 해제하려는 미 정부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로비활동을 전개했으며 이런 활동이 주효해 미 정부는 북한 여행 제한조치를 1년간 재연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일제시대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한인의 귀환 문제에 대해 일본측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비용부담을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도 당시 일본 외무성 북동아과장은 외교부 이동익 동북아1과장이 제기한 사할린 교포 귀환비용 일부 부담요구에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본측의 비용부담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솔직히 말해서 비용문제는 한일간의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타결된 문제이므로 공식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날 공개된 1976년도 외교문서는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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