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결혼 전 간통 혐의로 상대 남성의 아내에게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해 변호사를 선임한 적이 있다. 지금은 다른 남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A 씨는 세무서가 보낸 이 우편물 때문에 과거 자신의 간통 사실이 드러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선 세무서가 변호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면서 조사 대상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들에게 이 같은 내용의 우편물을 보내 사생활 및 인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성범죄 혐의로 기소돼 변호사를 선임했던 B 씨에게도 최근 서울 서초세무서가 보낸 비슷한 내용의 우편물이 배달됐다. 형사재판 피고인으로 변호사를 선임한 적이 있는지, 선임한 변호사에게 소송 대리 보수금 ○○만 원, 착수금 ○○만 원, 성공 보수금 ○○만 원을 지급한 사실이 있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것. 우편물에는 B 씨의 재판 사건번호와 주민등록번호도 적혀 있었다.
B 씨는 당시 성범죄 혐의로 기소됐지만 공소가 기각돼 처벌받지 않았다. B 씨는 “형사재판을 받은 사실은 가족도 모르고 있었다”며 “세무서가 과거 재판 사실을 들춰내 우편물을 보내는 바람에 가족이 이 사실을 알게 돼 고통을 받고 있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이혼 문제와 관련된 가사재판으로 변호사를 선임했던 C 씨에게도 서초세무서가 보낸 같은 내용의 우편물이 배달됐다. 이 우편물은 C 씨와 재혼한 남편이 받았다.
C 씨는 “과거의 재판은 다시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데 우편물 때문에 가정의 평온이 깨졌다”며 “재혼한 남편이 나의 이혼 사실을 알고 있긴 하지만 우편물 때문에 상당히 불쾌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이 우편물로 사생활과 인격권이 침해당했다며 청와대에 민원을 냈다.
이런 우편물을 보낸 데 대해 서초세무서 측은 “소득세법에 납세자와 거래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질문하거나 관련 서류 제출을 명령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보낸 우편물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받아 보는 것은 세무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서초세무서 측은 또 “주민등록번호와 사건번호는 변호사들이 부가가치세를 신고할 때 내는 수익금 명세서에 적혀 있는 것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변호사는 “소득세법은 의뢰인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의뢰인이 답변할 의무까지 있다는 것은 아니다”며 “이런 우편물이 세무조사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고 본인 아닌 배우자나 가족이 우편물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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