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의 한 건설현장. 몽골인 파타(36) 씨가 지갑 안에서 딸의 사진을 꺼냈다. 입에 미소가 번져 갔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아내와 딸을 보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찹니다.”
그는 2003년 11월 입국했다. 지난 3년 4개월 동안 아내와 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딸이 생각날 때마다 지갑 속에 간직한 딸의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아내에 대한 사랑은 한 달에 두 번 주고받는 편지로 대신했다.
‘불법 체류자’였던 파타 씨가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법무부의 특별 조치 덕분.
법무부는 지난달 17일 발생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주상복합건물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11명의 생명을 구해 낸 파타 씨를 포함해 몽골인 4명에 대해 ‘특별 체류’를 허가했다고 이날 밝혔다.
▶본보 3월 24일자 A2면 참조
“한국은 제2 고향, 고향사람 구한 것뿐”
한국 정부가 외국인의 특별한 공로를 인정해 체류를 허가한 것은 처음이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는 외국인이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 또는 표창을 받거나 한국에 특별한 공헌을 한 사실이 있는 경우 특별 체류를 허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별 체류 허가를 받으면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고, 자유롭게 병원 치료도 받을 수 있다. 고용주의 동의서가 있으면 출입국도 비교적 자유롭다.
이날 저녁 파타, 바트델게르(37), 곰보수릉(26), 삼보도느드(22) 씨 등 몽골인 ‘의인’ 4명은 서울 은평구 수색동의 한 삼겹살집에서 ‘자축 파티’를 열었다.
“파타 형이 오후에 전화해서 ‘이제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막내 삼보도느드 씨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유쾌하게 웃었다. 몽골외국어대 한국어과 1학년을 다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지난해 5월 입국한 삼보도느드 씨는 “정식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된 만큼 돈을 많이 벌어 한국에서 정식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인 차츠랄(26) 씨와 함께 음식점을 찾은 곰보수릉 씨는 부인을 꼭 껴안았다. 5년 전 몽골에서 결혼한 그는 “불이 났을 때는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180cm에 80kg의 건장한 체격인 곰보수릉 씨는 화재 현장에서 가장 큰 활약을 했다. 몽골에서 유도선수였던 그는 30층 옥상에서 23층까지 내려가 인부들을 구했다.
바트델게르 씨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일을 할 때면 ‘혹시 신고하지 않을까’ 늘 불안했다”며 “이제 그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는 “잔업을 시키고 나서 불법 체류자라고 돈을 주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잘 챙겨 준 사장님이 더 많았다”며 “한국 사람들은 정말 따뜻하다”고 전했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관공서 앞을 지나기도 싫었던 이들은 합법 체류자가 돼 노동부를 직접 찾아간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돼 있었다.
법무부는 “이들의 선행에 대한 동아일보의 보도가 나온 뒤 병원과 출입국관리소 등을 통해 사실 확인을 거쳐 이같이 결정하게 됐다”면서 “관련 법규를 좀 더 검토한 뒤 이들에게 어떤 체류 자격을 부여할지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