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제주 대흘초교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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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형 자율학교인 대흘초등교 학생들이 아담한 잔디운동장에서 미국인 교사 켈리 컬프 씨와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다. 수업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과 호흡하는 원어민 교사의 모습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 제주=임재영 기자
제주형 자율학교인 대흘초등교 학생들이 아담한 잔디운동장에서 미국인 교사 켈리 컬프 씨와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다. 수업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과 호흡하는 원어민 교사의 모습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 제주=임재영 기자
《제주 제주시에서 차로 30분가량 걸리는 조천읍 대흘초등학교. 조용하던 산간 학교가 3월부터 ‘제주형 자율학교’로 지정된 이후 시끌벅적해졌다. 매달 두 번 등교하는 토요일은 ‘F-day(Foreigner day)’. 이날은 영어로만 수업이 진행된다. 쉬는 시간에도 영어로 대화하기로 약속이 됐다. 교직원, 학부모, 방문객도 예외가 아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전에 영어학원에 다닐 때에는 영어로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서 따분했는데 여기는 친구들끼리도 장난하며 영어를 해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제주시내에서 이번 학기에 전학한 5학년 부서현(11) 양은 슈퍼마켓, 공항, 레스토랑, 호텔 등 가상 체험 공간이 마련된 교실을 돌며 선생님과 영어로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수업은 원어민 교사와 외부에서 초빙한 영어 강사가 주도한다.

부 양의 어머니 강인숙(41) 씨는 “건강한 몸과 마음에 중점을 둔 교과과정이 마음에 들어 서현이와 남동생(1년)을 함께 전학시켰다”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파김치가 됐던 모습은 사라지고 서현이의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 한 학생이 원어민 교사인 켈리 컬프(29) 씨의 손을 잡고 “스윙(swing)”하며 떼를 쓴다. ‘회전목마 놀이’를 해 달라는 뜻. 외국인을 대하는 데 쑥스러움이나 심리적인 거리감이 없다.

축구를 하던 박준홍(10·4학년) 군은 “잔디가 깔린 운동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엄마를 설득해서 전학했다”며 “일요일에도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흘초교는 분교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율학교 지정 이후 학교 분위기가 바뀌면서 오히려 전학 희망 학생이 대기하는 수준으로 변했다.

자율학교는 시가지 과밀 학교의 분산과 농촌 소규모 학교의 활성화를 위해 제주도교육청이 올해 처음 추진한 특색 사업.

원어민 교사가 고정 배치돼 학생들과 매일 함께 활동한다. 놀이와 체험 중심으로 교과과정이 편성됐다.

이 학교 학생은 학년당 한 학급씩 모두 148명. 이 가운데 64명이 부 양이나 박 군처럼 시가지 과밀 학교에서 전학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던 잔디운동장에 생기가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마 넝쿨이 드리워져 영화 ‘각설탕’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교실 복도에는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신은순 교사는 “학생들이 매일 원어민 교사와 생활하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줄었다”고 말했다.

뇌호흡, 명상, 개그, 전통문화 체험, 오름 탐사, 마술, 습지 탐험 등 다른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학생들은 등교하자마자 운동장을 한두 바퀴 돌고 줄넘기,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철인3종 세트’를 한다. 강요는 하지 않는다. 놀이에 가까워 오히려 학생들이 즐거워한다.

주당 영어시간은 1, 2학년 2시간, 3, 4학년 3시간, 5, 6학년은 4시간으로 일반 학교에 비해 2시간이 많고 방과 후 수업에도 영어과목이 따로 개설돼 있다.

방과 후 수업은 영어, 바이올린, 미술, 컴퓨터, 축구 등 5개 과목이 무료로 진행돼 학부모 부담이 작아졌다. 모든 학생이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할 정도로 열기가 높다.

강경찬 교장은 “자율학교가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 가는 농촌학교의 새로운 모델이 되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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