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은데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주고받는 대화에는 날이 시퍼렇게 서 있더군요.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만남에 대한 얘기입니다. 두 사람은 이날 경총회관 회장실에서 노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습니다.
취임 2개월째인 민주노총 이 위원장이 취임 인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자리였죠. 의례적인 인사방문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전날 경총을 포함한 경제5단체가 정부의 노동정책과 노동계를 비판한 직후여서 이날 방문은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처음 말문을 연 것은 경총의 이 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유니폼이 바뀐 모양인데 이제 빨간색 옷은 입지 않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빨간 옷은 파업 등 강경투쟁을 상징합니다.
그러자 이 위원장은 바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입는 것이죠”라고 답했습니다. 표정도 순간 굳어졌습니다. 그는 곧이어 “어제도 한 건 하셨더군요”라며 “어제 부회장단 회의 같은 것이 저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날 경제5단체의 행동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나타낸 것이었죠.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에서 투쟁일변도의 노동운동보다 상대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노동운동을 강조하는 온건파로 꼽힙니다. 기자의 눈에는 그가 마치 “계속 노동계를 비판한다면 다시 강경투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자 이 회장도 일부 노조의 행동에 대해 꼬집었습니다. 이 위원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당부한 직후였습니다.
이 회장은 “기업뿐만 아니라 노조도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노조도 선진국 노조처럼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사화합의 기반을 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일부 대형 제조업체 노조의 극단적인 투쟁을 염두에 둔 듯 “제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