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들은 순간 바다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길이 10m가 넘는 시커먼 물체를 봤다.
이 사고로 오모(75·여) 씨가 객실 의자에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로 숨지고 이모(65·여) 씨 등 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승객 215명과 승무원 8명을 태운 이 배에는 고령자 여행객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승무원과 승객들은 "배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심하게 흔들린 직후 주변해역이 검붉은 핏빛으로 변한 것으로 볼 때 검은 물체는 고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최근 한일해협에 고래 개체 수가 늘고 있고 2004년 이후 고속여객선의 충돌사고 5건 전부가 고래 때문으로 밝혀진 사실을 들어 이번 사고의 원인도 고래로 추정했다.
국제포경위원회에 따르면 1952년 이후 고래충돌 인명사고는 50건, 1975년~2002년 사이 고래류가 선박과 충돌해 좌초되거나 숨진 것은 11종 292마리에 이른다.
고래연구소 김장근 소장은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포경이 금지된 1986년 이후 고래의 증가는 엄청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 해역에는 6~8m에 5~10t의 밍크고래에서부터 14~20m에 40t 이상의 향고래, 참고래 등이 많이 나타난다.
대형 여객선의 경우 이런 고래와 충돌해도 큰 피해는 없으나 500t 내외의 수중익선(배 아래쪽의 날개로 수면 위를 떠가는 배)이 문제. 현재 부산과 일본 간에는 이 규모의 수중익선 8척이 투입돼 하루 평균 7회 정도 운항하고 있다.
시속 80㎞의 쾌속선이 갑자기 나타난 고래를 감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래가 가쁜 숨을 들이쉬기 위해 불시에 수면 위로 치솟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
김 소장은 "아무리 선박장비가 첨단으로 바뀌더라도 원시적인 고래와의 충돌을 막는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며 "고래가 싫어하는 초음파나 스트레스용 잡음을 발사하더라도 학습능력이 뛰어난 고래는 호기심에 떼로 몰려오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일정 해역에 고래가 나타나면 어느 선박이든 곧바로 센터와 연결해 주의를 전파하는 '선박안전콜센터'를 올해 초 설치했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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