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1년에 한 번 있는 성동구 마을 잔칫날. 성동구민들은 2000년부터 해마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를 벌여왔다. 구민들은 “금호산 벚꽃 잔치는 다른 동네잔치와 다르다”며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10년 전만 해도 맨발공원에서 꽃을 보기는 어려웠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우후죽순 들어섰던 판자촌이 약 20년 전 철거된 뒤 금호산은 나무도 건물도 없는 황량한 공간으로 남았다.
이런 맨발공원이 ‘성동구 괴짜 천사’로 통하는 이윤우(68) 씨 덕분에 동네 명소로 변신했다. 33년 전 전남 장성에서 서울로 올라와 금호산자락 판자촌에 정착했던 이 씨가 1998년부터 이곳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 “몇 년에 걸쳐 묘목을 심고 매일같이 물을 길어 날랐지. 30년간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의류사업을 하며 모은 돈 4000만 원이 밑천이었어요.”
자신처럼 지방에서 올라와 판자촌에 모여 살다가 금호산 근처 금호2가동에 정착한 이웃들이 뒷산에 가득한 벚나무를 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기를 바랐다는 것.
처음에는 “웬 벚나무냐”고 시큰둥해 하던 주민들도 이 씨의 정성에 나무 심기를 돕기 시작했다.
“저 나무는 내가 운영하던 독서실 학생들이랑 심은 거야. 저쪽 나무들은 동네 주민 80명이 같이 심었고….”
금호산 이곳저곳을 가리키는 이 씨의 얼굴엔 벚꽃처럼 환한 웃음이 피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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