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중동 60-13. 이른바 ‘역전통’이라 불리는 이곳에 맞춤 양복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있다. 기신양복점. 60년이나 이어 온,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맞춤양복점으로 대전에서 살아온 50대 남자라면 한 번쯤은 가 보았거나 가 보고 싶던 곳이다.
그러나 20평 남짓한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초창기의 흑백 간판사진 외엔 반백 년을 훨씬 넘긴 흔적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분위기가 깔끔하고 세련됐다.
기신양복점은 충남 부여에서 도시생활의 꿈을 안고 대전으로 올라온 김현갑(84) 씨가 1947년 지금의 한밭식당 맞은편 골목에 문을 열었다가 1958년 목 좋다는 지금의 장소로 옮겨왔다. 이후 1978년 차남인 근배(62) 씨가 이어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 전성기에는 한 달에 300벌의 주문이 쇄도했다. 한 벌 값은 3만 원 선. 지금 돈으로 치면 90만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그런데도 한때는 직원이 50명이 넘었다. 서울 명동에 분점을 운영했을 정도.
50명 중 재단사 서인석(69) 씨는 35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디자이너’라는 표현 대신 굳이 ‘재단사’로 불러 주기를 원한다. 그것이 더 숙련되고 전문적인 느낌을 준다고. 살림을 맡고 있는 홍석만(64) 씨도 기신과 인연을 맺은 지 30년이 됐다.
기신양복점에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집 양복만을 고집하는 ‘마니아’들이 수두룩하다.
충북 옥천군이 연고인 이용희 국회부의장은 40년이 넘는 고객이다. 지금도 가끔 전화로 주문해 옷을 맞춰 입는다.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과 김주일 대전상공회의소 회장도 한결같은 단골이다. 고인이 된 동아연필 김정우 회장과 안세영 전 대전일보 사장도 김 씨가 잊지 못할 고객이다.
이곳에서 사용되는 투박한 사이즈 명세서는 지금도 옛 용어를 고집하고 있다.
‘진동(등길이)’ ‘총장(목에서 발목에 이르는 길이)’ ‘상의장(상의 길이)’ ‘상동(가슴둘레)’ ‘둔품(히프 크기)’ 등….
맞춤 양복의 스타일도 별도로 표기해 뒀다. 뒤트기, 옆트기, 통마이, ‘요꼬(바지의 직각 주머니)’ 등 다양하다.
김 씨는 “기성복이 일반화돼 찾는 이가 크게 줄었지만 변화에 뒤지지 않도록 항상 패션잡지를 보고 익힌다”며 “맞춤 양복에 매료돼 다시 찾는 고객을 위해 두 손과 두 팔이 다할 때까지 양복점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 대전 원도심 지역 중 신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멋이나 맛, 재미로 소개할 만한 곳이 있으면 제보 바랍니다. 이 시리즈는 매주 수 목요일 게재됩니다. 메일: mhjee@donga.com 전화: 042-253-9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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