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위협 느낄 때 많다” 사회복지사들의 토로

  • 입력 2007년 4월 20일 14시 30분


20일 오전 서울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7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장면(좌)과 지난 17일 남산에서 열린 제3회 ‘서울사회복지걷기대회’에 참석한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들.(연합, 동아)
20일 오전 서울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27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장면(좌)과 지난 17일 남산에서 열린 제3회 ‘서울사회복지걷기대회’에 참석한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들.(연합, 동아)
‘제27회 장애인의 날’을 맞은 20일, 모든 언론은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음지에서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회복지사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갖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사명감 하나로 일한다. 연세대 최수찬 교수는 “사회복지사의 근무 환경이나 처우에도 정부나 관련 단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음지의 천사 ‘사회복지사’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편집자

장애인 시설에서 2년째 근무해온 사회복지사 이진경(25) 씨는 최근 섬뜩한 일을 당했다. 자신이 돌보던 정신지체장애인 A씨가 갑자기 칼을 휘두르며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

이 씨의 비명에 놀란 동료들이 몰려왔다. 한 남자 복지사가 A씨를 제지하려고 다가가자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더욱 난폭하게 굴었다. A씨의 손에 들린 칼이 언제 이 씨를 찌를지 몰랐다.

10여분에 걸친 사건을 수습한 건 A씨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복지사였다. 그는 침착하게 A씨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A씨의 난동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종종 복지사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폭력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곤 했다.

이 씨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장애인 관련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해왔다. 간혹 사소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는 걸 듣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박인선(32) 씨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 박 씨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친다. 그는 남성 정신지체장애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능력도 탁월하지만 자상하기 때문.

남성 장애인들 중에는 수업 시간이면 어김없이 박 씨에게 애정 공세를 퍼붓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B씨는 도가 심했다. 그는 박 씨에게 몰래 다가가 킁킁거리며 향기를 맡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곤 했다. 심할 경우에는 스타킹을 벗기려고 달려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박 씨는 B씨를 어르고 달래며 잘 받아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씨가 계단을 내려가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B씨가 나타나 박 씨를 밀었다. 박 씨는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굴렀다. 늑골에 금이 가고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박 씨는 “가끔 뜻하지 않게 부상을 입는다. 하지만 달리 하소연할 데가 없다. 정신지체장애인들은 좋아서 또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회복지사 이한경(34) 씨는 구타를 당해 이빨이 부러졌다. 정신지체장애인인 C씨가 갑자기 입에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이 씨는 C씨에게 다가가 응급처지를 하려고 했다. 그 순간 C씨가 이 씨에게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던 것.

“욕설은 예사, 칼·흉기 이용한 치명적인 폭력도 일어나…”

장애인 관련 시설 및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은 고유의 업무 이외에도 스트레스가 많다.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온갖 위험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욕설 같은 언어폭력은 예사고 폭행, 칼·집기 등을 이용한 공격으로 생명의 위협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복지정책 연구·지원 기관인 서울복지재단이 재작년 11월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4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복지시설 종사자 위험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2%가 “복지시설 이용자들이 밀거나 꼬집거나 꽉 움켜쥐는 등 경미한 수준의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38.4%는 “목조르기, 발로차기, 물건 던지기 등 높은 수준의 공격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11.2%는 “칼과 같은 흉기를 휘두르는 등 치명적인 공격을 한 번 이상 겪었다”고 답했다.

임지영 연구원은 “이번 조사에서 위험도가 가장 큰 기관은 노숙인 시설, 노인 시설, 장애인 시설로 나타났다. 모멸감을 주는 언어폭력은 다반사다.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신체 폭력도 일어나고, 목을 조르거나 물건으로 때리고 흉기로 위협하는 심각한 폭력도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은 “이용자들의 권리가 중요한 만큼 사회복지사의 권리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소재 A장애인종합복지관의 B사회복지사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은 아이큐가 70이하다. 2~3세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 혹은 ‘위험하다 그렇지 않다’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 없이 복지사들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한다. 여성 복지사들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몸을 쓰다듬는 것과 같은 신체 접촉은 애교 수준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회복지사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가 많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생각해보라. 성인 장애인인 경우 여성 복지사들보다 덩치가 크다. 그런 사람들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면 어떠할지…. 정말 섬쩍지근하다”고 털어놨다.

“아이들 상태가 좋아질 때…가슴 뿌듯”

현재 전국에는 134개소의 장애인 관련 복지관이 있다(2006년 6월 30일, 사회복지사협회 등록 기준). 종사자는 4,5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왜 다른 시설에 비해 위험도가 높은 장애인 시설을 자원하는 걸까. B 복지사의 말에서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글을 못 읽던 아이들이 어느 날 활짝 웃으며 ‘선생님 저 글 읽을 수 있어요’라고 자랑하거나 자폐아나 정신지체장애인들이 꾸준한 상담과 치료로 상태가 좋아지는 걸 볼 때, 정말 가슴 뿌듯하다. 그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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