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법관 공평한 평결 내릴까
우리 헌법은 다른 나라 헌법보다 엄격하게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제27조 제1항)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관이 아닌 자의 재판 참여를 봉쇄하는 규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법관의 자격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법관이 아닌 자가 재판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논리가 팽배해 왔다.
민주화 과정에서 정부와 의회의 개혁과 더불어 국민의 사법 참여를 보장하는 사법 개혁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방향은 여러 갈래로 논의되어 왔다. 기술입국 시대를 맞이해 독일식 기술법관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으나 결국 특허법원 설립과 기술심리관 제도로 정착됐다. 기술심리관 제도는 법관이 아닌 자가 재판에 참여하는 첫 모델이다.
국민 일반이 재판에 널리 참여할 수 있는 제도로는 배심제와 참심제가 있다. 배심제는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직업 법관과 독립하여 사실 문제에 대해 평결을 내리고, 법관도 배심원의 사실 판단에 대한 평결에 구속되는 제도다. 참심제는 일반 시민인 참심원이 직업 법관과 같은 권한을 갖고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안’은 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렴해 ‘한국형 사법참여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중죄의 형사재판에 한해 피고인이 원할 경우 국민 참여 재판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경우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형사재판에 직접 참여해 유무죄를 판단한 뒤 판사에게 권고적 효력을 지닌 평결을 제시한다.
법관은 배심원단의 평결에 기속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배심원단의 평결을 배척하려면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야만 한다. 권고적 효력만 부여한 이유는 위헌 논의를 잠재우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점진적 제도 정착과 연계된 결과물이다. 국민 참여 재판의 대상 범죄를 매우 제한적으로 설정한 것도 같은 취지다.
그간 모의재판과 공청회를 통해 많은 문제점을 보완해 왔다. 하지만 지연 학연 혈연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배심원으로 참여할지, 배심원이 공평무사한 평결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 의구심이 남아 있다.
외국제도 무분별 도입 안될 말
한편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재정신청 대상을 모든 고소사건으로 확대하고 있다. 재정신청이란 고소, 고발사건을 검찰이 불기소 처분할 때 법원에 기소 여부를 재심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재정신청이 확대되면 영장실질심사제, 구술심리주의 확대와 더불어 국민의 사법 불신 해소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헌법소원 사건의 70%를 차지하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도 대폭 정리될 것이다. 그러나 남소의 폐해를 어떻게 시정할 것인가란 새로운 과제를 던져 준다.
국민의 사법 참여 확대를 통해 사법은 민주적 정당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외국 제도의 무분별한 도입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부응하는 한국적 모델을 정착시키는 지혜를 법조계와 국민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한국공법학회 회장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