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초등학생 양지승 양 유괴 피살사건 수사는 그런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지승 양은 집에서 120m 떨어진 과수원 내 가건물에서 유괴범에게 성추행당한 후 살해됐고 시신은 현장에 숨겨졌다. 3년 동안 이 가건물에서 거주한 범인은 어린이 납치 미수를 포함해 전과 23범이었다. 경찰은 연인원 3만4000여 명을 동원해 주변을 수색했다지만 40일 동안 시신도 못 찾고 헤맸다. 동종(同種) 전과자를 대상으로 한 탐문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을 만큼 기본이 안 된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재벌인 H그룹 K 회장이 경호원을 동원해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보복 폭행했다는 의혹 사건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지난달 9일 밤 서울 시내의 한 술집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지만 쌍방이 합의했다는 이유로 혐의자들을 입건하지 않았다. 초동수사부터 제대로 안 된 것이다. 경찰은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뒤늦게 관련자들에게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 전형적인 뒷북치기다. 경찰 총수 출신의 사건 무마 개입설까지 나오는 걸 보면 경찰이 K 회장을 의식해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두 사건은 경찰의 기강 해이와 무능이란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특히 지승 양 사건은 인천 초등학생 박모 군 유괴 피살 사건에 국민이 놀라고 있을 때 발생했다. 그런데도 부실 수사를 했다니 경찰이 얼마나 나사가 풀려 있는지 알 만하다. 잇따른 유괴사건으로 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찰이 수사권 독립만 외친다면 얼마나 지지를 받겠는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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