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는 길 숨막힌다]<하>허리 휘는 교통비

  • 입력 2007년 4월 27일 06시 30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회사까지 출퇴근하는 교통비로 하루 평균 9500원 정도를 지출한다.

김 씨가 이용하는 호수마을 앞 마두역에서는 여의도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1700원을 내고 일산에서 서울의 당산역까지 버스로 이동한 뒤 당산역에서 회사까지는 택시로 이동하는 출퇴근길을 김 씨는 2년 반째 반복하고 있다.

▽돈도 시간도 갑절=물론 김 씨가 택시를 타지 않고 출퇴근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당산역에서 내리지 않고 10분 정도 버스를 더 타고 가서 종점인 영등포에서 내리면 여의도로 가는 서울시내 버스로 갈아탈 수 있다.

그러나 비용 대비 시간을 계산하면 ‘당산역+택시’가 효과적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내린 김 씨의 판단이다.

또 서울 지하철 3호선과 연결되는 전철 일산선을 타고 종로3가에서 5호선으로 갈아탄 뒤 여의도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택할 경우 출퇴근 시간이 버스를 이용할 때의 두 배가 된다.

김 씨는 “이러다 보니 신도시에 사는 많은 동료들이 길이 막히는 데도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 사는 맞벌이 주부 황성희 씨는 서울 신촌의 회사까지 출근하기 위해 매일 오전 6시 반 전에 집을 나선다. 그래도 황 씨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면 이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100m를 넘는다. 5분마다 광역버스가 오기는 하지만 버스마다 20여 명의 승객은 자리에 앉지 못한 채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서울시청에 닿을 때까지 한 시간 넘게 서서 가야만 한다.

3년째 계속되는 지옥 같은 출근길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황 씨에게는 대안이 없다. 풍덕천동에서 서울 강북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황 씨에게 퇴근길은 또 다른 전쟁이다. 회사에서 퇴근해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앞에서 갈아 탄 수지행 광역버스는 서울시내 이곳저곳을 거치기 때문에 경부고속도로까지 진입하는 데만 무려 한 시간이 걸린다.

▽교통난 해결의 먼 길, 단계적 순서는?=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집 가까이에서 서울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광역버스 노선 신설”을 요구하지만 이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할 서울시와 경기, 인천의 생각은 다르다.

서울시는 2005년 수도권 시민들의 출퇴근 불편을 덜기 위해 서울 인천 경기가 ‘수도권교통조합’을 만들 때 앞장섰지만 서울로 진입하는 광역버스 노선 신설과 증차 요구에 대해서는 ‘억제’ 방침이 확고하다.

서울시는 “노선 신설과 증차는 서울시의 교통난을 가중시켜 수도권 전체의 교통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며 “무조건 노선 증설을 하기보다는 원거리는 광역철로 다니고 가까운 거리는 버스로 이동하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업장이 경기도에 있는 버스회사들은 서울시의 관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서울시가 종합적인 교통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는 우려가 노선 신설을 가로막고 있다. 일례로 신도시 주민들의 불만 중 하나인 광역버스의 ‘꼬불꼬불 노선’에 대한 개선에 면허권을 갖고 있지 않은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노선 신설보다 환승체계 구축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신도시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지역에 대규모 복합 환승센터를 만들고 환승센터에서 서울시내로 들어오는 노선의 정류장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오재학 연구위원은 “서울 도심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광역버스는 서울 경계까지만 운행하고 서울 도심 진입은 서울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 현 단계에서 가능한 보완책”이라며 그 전제조건으로 서울과 경기, 인천 지역의 요금체계가 통합되는 한편 편리한 환승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기도와 서울시는 버스카드 통합과 관련해 거의 합의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 교통난 해결 지자체간 ‘엇박자’ 해법은

수도권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통합행정기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치단체 간의 정책방향이 엇갈려 혼선을 빚는 만큼 이를 실질적으로 통괄 조정할 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가 이에 대한 구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세 자치단체는 교통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도권교통조합’을 이미 만들었다.

그러나 ‘수도권교통조합’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자치단체의 협의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광역버스 노선조정과 신설 등을 할 만한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

프랑스 파리에는 STiF라는 광역교통행정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파리뿐 아니라 주변 도시를 포함한 지역을 관할하며 대중교통의 이용조건과 요금, 서비스 수준 등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 지하철 14개 노선과 교외 전철망, 연장 1만8417km에 이르는 1254개 버스노선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영국에는 TfL이라는 기구가 2000년 7월 출범했다. 런던의 중장기 교통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지하철, 버스 등 런던에서 운행되는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직접 운영,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1964년 도시대중교통법에 근거해 MPO라는 기구를 여러 대도시에 설립해 광역교통체계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수도권교통조합의 이인재 조합장은 “선진국처럼 주민 위주의 광역교통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선 조정과 신설 등의 권한을 갖는 법적 독립 기구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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