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학교나 지역별 학력 격차가 드러나고 고교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의 학력 수준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학교별 학력 격차가 큰 것으로 판명될 경우 고교 학교생활기록부(내신) 성적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대학 입시 '3불(不) 정책'(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의 근거가 흔들릴 개연성이 있다.
교육계에선 학교별 성적을 공개해 학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 성적을 공개하면 학교의 서열화로 사교육 등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주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서울고법 특별2부(부장판사 김종백)는 27일 공주대 이명희 교수 등 3명이 "2002, 2003년도 성취도 평가 자료와 2002¤2005학년도 수능 성적 원자료를 공개해 달라"며 교육인적자원부를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 이 교수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지난해 9월 1심에서 수능 성적 원자료(개인식별 자료 제외)만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성취도 평가는 학생의 성적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의 최종 학력 등 개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성취도 평가의 결과를 공개하면 전국 학교가 서열화돼 사교육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교육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미 만연한 입시 경쟁과 공교육 파행, 사교육 의존 등의 현실을 개선해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교육 상황에 관한 정확한 자료를 국민과 전문가들에게 공개할 필요가 크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연구자들에게 성취도 평가와 수능 자료가 제공되면 현행 교육문제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가능하고 생산적인 정책토론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며 관련 정책을 입안하거나 교육정책을 개선하는 등의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규태 교육부 대학학무과장은 "수능 원점수와 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할 경우 학교 간, 지역 간 과열 경쟁과 서열화로 교육과정을 정상 운영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수능 성적과 성취도 평가 자료가 공개되면 전국 고교 3학년생과 초등 6학년생, 중 3학년생, 고 1학년생의 학교 및 지역간 학력 격차가 드러나게 된다.
특히 성취도 평가는 대상 학교의 1, 2개 반 전원이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개인 정보가 없더라도 학교와 학급 별 학생 수 등의 정보를 토대로 가공하면 개인별 성적 차이까지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남명호 박사는 "성취도 평가 결과를 가공하면 학교, 지역별 학력격차를 알 수 있다"면서 "일부 학생만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잘못된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판결에 대해 교육단체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애순 대변인은 "성취도 평가 결과가 드러나면 학교 서열화가 심화돼 공교육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성적 공개는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몰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재갑 대변인은 "지역별, 학교별 차이가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정책 연구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려면 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석기자 wing@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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