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만 되어도 밤 12시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고 학교는 시험만 보는 장소가 된 지 오래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임금 인상의 주범이며 대졸 엄마의 노동력은 아이들 뒷바라지로 낭비되고 있다. 천문학적 사교육비 지출에도 불구하고 대학 신입생의 학력은 갈수록 저하됐다. 문제가 이 지경인데 대선 주자들은 교육 문제에 함구한다. 평준화를 반대하면 자기 자식이 일류 학교에 못 갈 것을 우려한 학부모가 표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을 성적순으로 줄 세웠던 과거 입시제도는 공부에 소질이 없는 어린아이에게 열등감을 심어 준 비인간적 제도였다. 그러나 평준화를 반대한다고 과거 제도로 회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친구 노트 찢으라 강요하는 입시
국내 고등학교의 절반은 사립이다. 이들 대부분을 자립형 고교로 허가하고 수업료와 교과 과정을 자유화하자. 이들 학교는 수업료를 더 받기 위해서라도 우수 교사 유치와 시설 개선에 노력할 것이다. 존경하는 교사가 많아지면 낮에 학교에서 잠자고 밤에 학원에 가는 기현상이 사라진다. 어차피 써야 될 교육비라면 사교육비를 학교에 줄 테니 학원보다 학교를 좋아하게 해 달라는 부모가 한둘이 아니니 수요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들 학교가 귀족화될 것을 걱정한다면 저소득층 학생을 30% 이상 의무적으로 선발하도록 규제하자. 우수한 저소득층 학생을 유치하려 서로 경쟁하고 그 결과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이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수의 특목고만 있는 현재와 비교해 전체 고교의 반 정도가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되면 특목고 과열 입시경쟁 문제도 우려할 정도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다만 공립학교에 대해서는 평준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 그래야 공부 못하는 학생만 모아 놓은 열등 학교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웠던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상위권 학생은 경쟁을 시키되 나머지는 구분하지 말자는 의도다. 이와 함께 사립학교에까지 나눠 주었던 재정 지원을 공립학교에 집중하면 공립학교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공립학교에 대해 평준화 정책을 유지해도 서울고법의 판결대로 학교 간 성적 차는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인성교육이 정상화되고 뒤처진 학교를 골라 정부 지원을 강화할 수 있다. 학교 간 실력 차를 인정하지 않고 내신만 강조하다 보니 같은 학교 친구가 적이 되고 있다. 친구가 잘하면 내가 대학에 갈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현 제도는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는 친구의 노트를 몰래 찢으라고 강요하는 제도다. 학교 간 차이를 인정했던 과거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그렇지 못한 친구를 도와주었던 미덕이 있었다.
올바른 교사 평가를 위해서도 학력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 교내 평가에만 의존하면 열심히 노력하는 선생님일수록 ‘왕따’가 되기 쉽다. 학업성취도를 학교 간 비교할 수 있어야, 즉 교사가 입학 때에 비해 졸업 때까지 학교 성적을 어느 정도 개선했는지 다른 학교 교사와 비교할 수 있어야 생산적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학교 간 성적 차 공개해야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도 정보 공개가 중요하다. 내신만 이용해 학생을 뽑으라고 하니 대학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경시대회 수상 경력 등 기타 정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결과 학생을 더 많은 학원으로 내모는 셈이다.
평준화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교육 정상화와 경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자리에 연연해 평소 소신을 바꾼 사람이 많은 나라에 살다 보니 사재를 털어서라도 교육 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만들려는 빌 게이츠가 더욱 위대해 보인다.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한국채권연구원 이사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