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투명한 학교

  • 입력 2007년 4월 30일 03시 01분


‘J고, H고, K고 중 어느 학교가 대학 진학률이 높은가요?’ ‘이번에 Y고 걸렸는데요. 2000년 이후 수시 정시로 서울대에 몇 명이나 갔죠?’ 인터넷 포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질문들이다. 학생들은 어느 학교가 공부 잘 시키는지를 가장 궁금해한다. 자신도 ‘하면 된다’는 희망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누리꾼은 ‘J고는 H고, K고를 따라가지 못한다’거나 ‘별로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등 나름대로 답을 달지만 사실 확인은 어렵다. ‘투명성’을 강조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그런 학교 정보는 공개돼선 안 될 비밀인 탓이다.

▷조전혁(인천대 교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 등이 지난해 초중고교생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원자료를 공개하라고 교육인적자원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학교별 성적 격차가 존재한다는 건 공공연한 현실이고, 이를 공개해야 격차 개선의 길도 찾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법원은 수능시험 원점수를 공개하라는 1심 판결(작년 9월)에 이어 27일 초중고교생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도 공개하라는 2심 판결을 내렸다.

▷고법 재판부는 “국가는 국민에게 능력에 따른 균등한 교육을 제공할 헌법상 의무가 있다”며 “과도한 입시 경쟁과 공교육 파행, 사교육 의존 등의 현 실정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보를 숨김으로써 보호되는 교육 당국의 이익보다는 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국민의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다. 학교 망신은 잠깐이지만 그 덕에 정부 지원받고 경쟁력 있는 교육을 한다면 두루 이익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학교 정보가 공개되면 학교 간, 지역 간 과열 경쟁과 서열화로 교육과정을 정상 운영할 수 없다”며 상고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두려운 것은 무리한 평준화 정책의 실패를 자인(自認)해야 한다는 점, 학력 격차가 없다는 가정(假定) 아래서만 가능한 ‘내신 등급 대입제도’를 부정(否定)해야 한다는 점 등일 것이다. 이 정부는 스스로 투명하지도,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솔직하지도, 헌법정신과 법원의 판결에 겸허하지도 않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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