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동서남북/‘인성 입시’ KAIST의 도전

  • 입력 2007년 5월 1일 07시 52분


“저도 대학입시 현실의 문제점은 알고 있었는데…. 국내에 오래 있다 보니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에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지난달 26일 인성 평가를 대폭 강화한 내용의 ‘2008학년도 신입생 선발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외국 출장 중인 서남표 총장 대신 개혁안을 발표한 장순흥 교학부총장은 그 자신 한 대 얻어맞았다는 표정이었다.

성적순 선발의 문제점은 그동안 학교에서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 개혁안은 지난해 7월 취임과 함께 50여 년 만에 국내 생활을 시작한 서 총장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서 총장은 고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학과장을 지내면서도 개혁을 펼쳤다.

그는 KAIST 총장 취임 이후 ‘입시 공부 기계’로 전락한 국내 특수목적고 학생들을 보고 “개인은 물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 이상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A 과학고를 방문했을 때였다. 이 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자습실을 지키도록 밤 12시까지 기숙사 문을 잠가 놓는다”고 자랑했다. 이 말을 들은 서 총장은 “이건 ‘야만’이야. 집단 수용소지, 학교가 아니야”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개혁안을 당장 내년도부터 시행할 경우 KAIST는 입학생의 성적 하락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평가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아 혼선도 우려된다.

그러나 학교 측은 “도입 첫해에 70점만 맞아도 만족한다”며 단호한 태도다. KAIST의 ‘모험’을 계기로 인성 교육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면서 대부분의 대학 총장이 A 과학고 교장과 같은 학교 자랑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상상해 본다.

“학생들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시군요. 우리 대학에 많이 보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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