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지난달 26일 인성 평가를 대폭 강화한 내용의 ‘2008학년도 신입생 선발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외국 출장 중인 서남표 총장 대신 개혁안을 발표한 장순흥 교학부총장은 그 자신 한 대 얻어맞았다는 표정이었다.
성적순 선발의 문제점은 그동안 학교에서도 인식하고 있었지만 이번 개혁안은 지난해 7월 취임과 함께 50여 년 만에 국내 생활을 시작한 서 총장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서 총장은 고교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마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학과장을 지내면서도 개혁을 펼쳤다.
그는 KAIST 총장 취임 이후 ‘입시 공부 기계’로 전락한 국내 특수목적고 학생들을 보고 “개인은 물론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이 이상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A 과학고를 방문했을 때였다. 이 학교 교장은 “학생들이 자습실을 지키도록 밤 12시까지 기숙사 문을 잠가 놓는다”고 자랑했다. 이 말을 들은 서 총장은 “이건 ‘야만’이야. 집단 수용소지, 학교가 아니야”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개혁안을 당장 내년도부터 시행할 경우 KAIST는 입학생의 성적 하락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 평가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아 혼선도 우려된다.
그러나 학교 측은 “도입 첫해에 70점만 맞아도 만족한다”며 단호한 태도다. KAIST의 ‘모험’을 계기로 인성 교육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면서 대부분의 대학 총장이 A 과학고 교장과 같은 학교 자랑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상상해 본다.
“학생들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시군요. 우리 대학에 많이 보내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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