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자발적 유치’ 제주 강정동 가 보니

  • 입력 2007년 5월 4일 02시 51분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윤태정 마을회장(왼쪽)과 김정기 어촌계장이 강정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윤태정 마을회장(왼쪽)과 김정기 어촌계장이 강정항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해군기지 유치 결정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임재영 기자
《“막은 창에서 벗어나젠허민 기지가 들어와사 헙니다(막힌 곳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기지가 들어와야 합니다).”

3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항에서 만난 강세화(74) 씨는 단호한 어조로 해군기지가 강정동에 유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뱃일을 하면서 한평생을 보낸 강 씨는 “전에 한번 출어하면 조기나 옥돔을 50∼60kg 잡았지만 요즘은 3kg 잡기도 힘들다”며 “자식과 후손이 살기 위해서는 해군기지 유치처럼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지역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후보 예상지인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와 안덕면 화순리 등에서 반발이 커져 가고 있는 가운데 강정동 주민이 과감하게 유치 결정을 내렸다.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민 스스로 결단을 내린 강정동이 해군기지 건설 지역으로 결정될지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마을 발전 현실적인 수단”

강정동은 600여 가구 1900여 명이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어촌 마을. 무인도인 범섬과 서귀포월드컵경기장,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1980년대 바나나 재배 열풍으로 한때 고소득 마을로 꼽혔으나 수입 자유화로 타격을 받은 뒤로는 침체된 경기가 살아날 줄 몰랐다. 감귤, 화훼, 해산물 등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마을 청년회, 어촌계 등 자생 단체에서는 해군기지 후보 예상지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수차례 회의를 했다.

주민끼리 의견이 어느 정도 접근하자 지난달 26일 마을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하고 이튿날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강정동마을회 윤태정(62) 회장은 “해군기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며 “낙후된 마을을 발전시키는 방안이 절실했는데 해군기지가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트럭 한 대만 겨우 드나들 정도로 비좁은 마을 진입로가 있는 강정동은 그동안 각종 개발에서 소외됐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강정동 주민은 해군기지 유치 결정 이후 말을 아끼고 있다. 혹시 발생할지 모를 주민 갈등을 사전에 막자는 것.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의 ‘도움’도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

○항만시설 갖추는 국책사업

해군기지는 2014년까지 8000억 원을 투자해 12만 평 규모에 7000t급 이지스함을 비롯해 함정 20여 척이 계류하는 항만시설과 건물 등을 갖추는 국책사업.

남방 해역 천연자원 확보와 무역 수송선 안전, 해난사고 대처 등을 위해 제주 남쪽에 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방부 방침이다.

국방부 최광섭 자원관리부장은 최근 제주도의회를 방문해 “국가 안보와 국가 이익 보호를 위해 반드시 건설돼야 하는 중요한 사업”이라며 “강정동 해안 지형이나 수심은 해군기지 역할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해군기지 건설지역에 700억 원이 투자되고 배후 도시에 호텔, 체력단련장 등 군 복합 휴양시설이 들어선다.

해군기지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2002년 5월. 외교안보연구원이 제주항 인근에서 열린 함상 토론회에서 제주에 ‘기동함대 전략기지’의 필요성을 공식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제주지역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군사기지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 등은 ‘평화의 섬’에 위배되는 군사기지 건설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제주사랑실천연대, 제주해군기지 범도민유치위원회와 보훈단체 등은 이에 맞서 국가 안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해군기지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제주도는 민관으로 구성된 ‘제주 해군기지영향조사연구팀’의 결과 보고서를 바탕으로 해군기지 유치 동의 여부를 지난해 12월 최종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의견 수렴이 여의치 않아 계속 연기했다.

도민 토론회는 찬반양론의 격전장이 됐다. 지난달 13일 김장수 국방부 장관의 제주 방문을 저지하는 반대 단체 회원 등이 경찰에 연행되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당초 해군기지 건설 후보지는 안덕면 화순항. 이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닥치자 남원읍 위미항이 추가됐으나 이마저 반대 여론에 막혀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제주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해군기지 건설 여부는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 1차 여론조사, TV토론회, 2차 여론조사를 거쳐 15일경 최종 결정된다.

여론조사는 도민 1000명과 해군기지 후보 예상 3개 지역(화순리, 위미리, 강정동) 등에서 각각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해군기지를 유치하려면 우선 도민 여론에서 찬성이 높아야 한다”며 “지역별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많은 곳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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