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가이드’ 특집기사목록 |
‘간단한 체조를 한 뒤 1시간가량 책을 읽고, 3시간 후인 8시부터는 학교에서 수업 준비를 할 것이다. 12시에 먹는 점심은 아마도 샌드위치가 될 공산이 크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 위해 15분간 낮잠도 자야 한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팀 프로젝트를 위한 조별 모임이 2건 기다리고 있다. 조별 모임은 건별로 절대 2시간을 넘겨서는 안 된다. 자칫하다간 다른 공부를 망친다.’
조 씨의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다. ‘아차’ 하는 순간 과제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그래도 그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과정이 즐겁다. 테크노경영 전공 과정에 들어오기 전 그는 대한민국 최고 직장 중 하나인 삼성전자에 9년 동안 몸담았었다. 통신연구소 연구기획그룹 과장이었다.
최성호(25) 씨는 캐나다 토론토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성균관대 MBA과정(GSB)에 진학했다. 한국에서는 북미로 유학을 가지만 그는 거꾸로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9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조만준 씨, 미국의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국내 기업에 다닌 최환석 씨, 캐나다의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유학 온 최성호 씨. 그들은 왜 한국의 MBA를 선택했을까.
○결단의 순간
MBA는 자격증이 아니다.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학비는 물론이고 황금 같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조 씨가 MBA 진학을 결심한 것은 2005년이었다. 당시는 과장 4년차로 1년만 더 있으면 차장으로 승진할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2004년에 좋은 실적을 낸 삼성전자는 그해 성과급을 두둑하게 지급했다. 2005년 경영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런 조건들을 버릴 수 있을까?’ 조 씨는 당시 이런 질문을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다. 부양해야 할 가족까지 있는 상황이어서 고민은 더 깊었다. 국내외에서 MBA 과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도 있을 때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알았다. 해외 유명 기업의 경영진 중에 MBA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은 것도 자극제가 됐다.”
인생을 길게 보면 임원이 될 나이쯤에는 경영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결국 그를 움직였다.
자신의 일처리 방식을 엄격하게 평가한 것도 퇴직 결심을 굳히는 데 한몫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아 보였을지 몰라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의 일처리 방식은 타성에 젖은 면이 없지 않았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외국 대학의 MBA 과정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외국의 유명 MBA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의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준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또 2년간의 교육 경비와 생활비를 고려하면 2억 원의 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외국으로 가기에는 위험(리스크)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 시간, 우선순위, 토론
새벽부터 밤까지, 한순간도 예외없이 시간은 금이다. 교수들이 과목별로 과제를 내줄 때 학생이 보유한 시간 총량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특히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의 토론에 참여하려면 그만큼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시험 기간과 과제 제출 기간이 겹치면 밤을 새우는 날도 부지기수다.
정해진 시간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다 보니 일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습관이 저절로 몸에 배게 된다.
MBA 과정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토론’이다. 모두 ‘토론식 수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조만준 씨는 “치열한 토론을 통해 해결 방안을 도출하면서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효율적으로 자료를 처리하는 능력과 한 가지 사안을 여러 가지 각도로 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 MBA 과정에서 얻은 또 다른 성과”라고 덧붙였다.
최환석 씨는 경험이 다양한 외국인 동료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다고 했다. 최 씨는 “ 중국에서 온 동료와 토론을 하면서 실제 중국의 상황과 그들의 인식이 어떤지를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새로운 꿈
“아모레퍼시픽에서 맡은 업무는 마케팅 분야였다. 금융업무 경험을 쌓고 싶었는데 마침 고려대 글로벌 MBA 과정 중에 있는 2개월 인턴생활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진학했다.”
MBA 과정에서 제너럴 일렉트릭(GE) 아시아 대표의 특강을 듣고서는 인생 목표도 새로 세웠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아시아 지역에서 관리자로 활동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금융 분야의 경험을 꾸준히 쌓아 아시아 금융의 본고장인 홍콩과 일본에서 근무하는 것은 단기 목표다.”
1995년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그곳에서 대학을 나온 최성호 씨는 ‘아시아의 미래’를 믿고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에서는 북미 대학 MBA라는 ‘떡’이 더 커 보이겠지만 그에게는 반대였다.
“패러다임은 아시아로 기울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추세와 함께 내 능력을 더 잘 계발할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돕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조만준 씨는 원래 연구원이었다. 서강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통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업무 조정과 조직관리에 더 매력을 느낀 조 씨는 사내에서 직무를 전환해 연구기획 업무를 맡았다.
“연구원으로서 익힌 기술에 대한 이해력, 기획자로서 익힌 이해관계 조정능력, MBA 과정을 통해 단련할 시장과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결합해 ‘나만의 발차기’를 만들 계획이다.”
조 씨는 기술 개발자와 기획가, 경영컨설턴트의 능력을 결합해 하이테크 부문의 혁신을 이끄는 하이테크 마케팅 전문 매니저를 꿈꾸고 있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후배들에게 주는 충고
“목적 의식을 가져라”
MBA 선배는 후배에게 어떤 충고를 할까.
MBA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명확한 목적 의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MBA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다. MBA를 마친 후 어떤 일을 할 것이며, 그 일을 하는데 MBA 과정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최환석 씨의 말이다.
최성호 씨의 조언도 비슷하다. 그는 “뚜렷한 목표 의식이 없으면 졸업을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찰과 장기계획이 먼저 필요하다는 얘기다.
조만준 씨는 30대 초반의 후배들이라면 MBA를 권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미래에 대한 목표를 명확히 한 다음에 MBA에 진학하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다만 자신과 비슷한 30대 중후반의 나이라면 직무전환이나 이직을 통해 경력을 쌓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주말에만 공부를 하는 주말 MBA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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