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자가 운전하던 차가 집 앞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정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한 뒤 119구급대에 연락해 상대 운전자를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대리운전자에게는 보험회사에 사고를 접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운전자는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더니 “보험 미가입 상태라는데 어쩌면 좋으냐”며 거꾸로 해결책을 물어왔다. A대리운전 업체는 평소 전 직원을 보험에 가입시켰으나, 지난달부터 보험사의 거부로 신규가입을 못하고 있는 실정.
다행히 상대 운전자는 가벼운 뇌진탕과 찰과상에 그쳐 MRI검사를 한 뒤 간단한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차량 바퀴에 깔리면서 크게 파손돼 수리비만 130만 원이 나왔다.
정 씨는 어쩔 수 없이 치료비와 수리비를 대리운전 기사와 반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100만 원을 냈다. 사고가 더 컸으면 어떻게 했을까 가슴을 쓸어내렸다.
업무상 회식이 많은 정 씨는 다음날 곧바로 ‘대리운전위험담보특약’에 가입했다. 대리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아도 차량 소유자가 가입한 자동차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 상품이다.
◇손보사 “대리운전자 신규가입 안 받아요”
손해보험사들이 지난달부터 대리운전자보험 신규판매를 전면 중단하면서 사고 발생시 소비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현대해상화재·쌍룡화재·메리트보험은 초창기부터 판매를 하지 않고 있으며 삼성화재는 3월부터 가입요건을 대폭 강화했다. LIG손해보험은 4월부터 신규판매를 중단했다. 동부화재 등 나머지 손보사들도 대부분 4월말부터 보험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보험료 대비 보험금 지급비율(손해율)이 너무 높아 손실이 많다는 게 중단 이유다.
손보사들에 따르면 대리운전자보험의 예정 손해율은 72%정도지만 실제 손해율은 100%가 넘는 경우가 많다. 손해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고객들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사고 보험금 지급액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자동차 보험의 평균 손해율은 80% 미만이다.
손보사들은 대리운전업체의 편법운용도 손해율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10명의 대리운전자를 두고 있으면서도 5명만 보험에 가입시킨 뒤 가입자 명의로 사고를 처리하거나, 사고가 누적되면 할증보험료를 내지 않기 위해 아예 사업자등록번호를 바꿔 신규로 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수법을 쓴다는 것.
손보사들은 일정 자격을 갖춘 업체에 한해서 사업자등록증을 내주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대리운전업체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갈 것”
이와 관련해 대리운전업계는 신규보험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리운전협회의 한 관계자는 “손보사에 보험가입을 거듭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서 “미보험 운전자들이 많아지면 사고발생시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손보사들의 속셈은 보험료 인상인데(10~15%인상), 영세한 업체들이 많아 미보험 운전자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대리운전자 4명중 1명 보험 미가입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대리운전자 4명중 1명은 보험 미가입자이다.
전체 8만3000명(한국교통연구원 추산)의 대리운전자 가운데 6만3000명(75.9%)만 보험에 가입해 있다. 금감원은 보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대리운전업체에 대해 보험가입을 독려하는 한편, 지난해 11월부터 보험 미가입 대리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냈을 경우 차주의 보험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하지만 많은 차주들이 1인 한정이나 부부, 가족, 나이 특약으로 보험에 가입해 있어 이마저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대리운전자의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대리운전업법을 만들어 지난 2004년 9월 국회 건교위에 상정했으나 3년째 계류 중이다.
정의화 의원실은 “정부의 무성의로 대리운전업법이 3년째 상임위에서 표류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대리운전자의 보험 의무가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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