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기 때문에 두 나라에 대한 학생들의 문화적·지적 호기심이 대단하다”며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밝혔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학부모와 아이들의 80% 이상이 일본과 중국을 수학여행지로 택할 정도란다. 작년에는 중국으로 다녀왔다.
일본 여행기간 학생들은 문화유적지나 명승지, 화산지역, 1600년대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의 도자 문화를 선도한 도공들이 살던 나리타 지역 등을 둘러본다.
서울 H고는 지난 8일 3박4일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경비는 61만9000원. 최고급 5성 호텔(2인 1실), 국내 항공편 이용 등 고품격 중국 여행상품을 이용했다.
이 학교도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80% 이상이 해외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감각 키워주기 위해” VS “가난에 대한 감각만 키워줄 뿐”
최근 중ㆍ고교에서 ‘해외 수학여행’ 붐이 일면서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교육부가 집계한 고교 해외 수학여행은 2004년 전국 82개교에서 지난해에는 215개교로 무려 3배 가까이 늘었다.
학교 측은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J여고 김태진 교사는 “다른 나라 문화를 접하게 되면 아이들의 시야도 넓어지고 사고의 폭도 깊어질 것”이라며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해외여행 경험은 성장에 자양분이 돼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중학교 때까지 설악산이나 경주, 제주도 등 국내에서 갈 만한 곳은 다 다녀온다. 갔다 온 데 또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싫어한다. ‘차라리 돈 좀 더 주더라도 해외로 가자’고 한다”고 덧붙였다.
H고 이세영 교사도 “조금이라도 이른 나이에 글로벌 감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해외여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사들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여행사에서 공짜로 보내주기도 해 못가는 학생은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생들의 말은 달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여행에 동참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고, 일부 학부형들은 주변에서 돈을 빌려 자녀들 여행을 보내기도 한다는 것. 학부모들은 해외 수학여행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심어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2 딸을 둔 이경선(43) 씨는 “내 자식만 안 보낼 수 없어 돈을 꿔서 보냈지만, 애들 수학여행에 수 십 만원을 쓰는 것은 일반 가정에선 어려운 일”이라며 “글로벌 감각을 키워주기 전에 빈부격차 때문에 상처 입을 가정이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김성섭(46) 씨도 “‘형편이 어렵더라도 자녀를 꼭 보내줬으면 좋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보내는데 어떻게 안 보내느냐”며 “생활에 쫓겨 해외여행을 한번도 못 가본 부모도 많은데…, 뭐가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학생들도 해외 수학여행의 부작용에 대해 얘기했다.
이들은 여행에 동참하지 못했을 경우 왕따(집단따돌림)를 당할까봐 두려워했다.
학교에서 만난 한 학생은 “여행비가 비싸다고 안 갈 순 없다. 안 가면 친구들이 ‘너네 집 그렇게 못 사냐’며 업신여기거나 왕따(집단따돌림)를 당할 수도 있다”며 “부모님에게 여행에 보내달라고 졸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못가는 친구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다 간다”며 “부모님께는 미안하지만 친구들이 다 가는데 나만 빠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세영 교사는 “요즘 사립초등학교 해외 수학여행은 120만 원을 넘는다. 몇 십만 원은 많은 게 아니다. 그리고 수학여행은 고교 때 단 한 번 가는 건데 돈이 없다고 못 보내는 학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여행사에서 학생 32명당 한 명씩 공짜로 보내주기 때문에 못 가는 학생들은 없다. 다만 병원에 입원한 환자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학생들만 제외된다”고 했다.
김태진 교사도 “학생, 학부모, 외부인이 기증한 중고품을 파는 알뜰시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거둔 수익금이나, 학무모의 동의를 얻어 학교발전기금에서 여행비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 못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고 항변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면서도 “수학여행 장소는 각 학교마다 학부모 의견을 묻는 등 절차를 거쳐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서 간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인터뷰에 응해준 교사, 학부모의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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