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을 지고 유치장으로 향하던 김 회장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김 회장은 구치소가 아닌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첫 대기업 총수가 됐다.
○ 김 회장, 경찰서 유치장으로
‘현재 심경과 한화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회장은 침묵으로 일관하다 유치장에 들어서기 직전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김 회장이 도착하기 1시간 전 남대문경찰서를 찾은 한화 직원 4, 5명은 멀찍이 떨어져 착잡한 표정으로 총수의 수감 모습을 지켜 봤다.
12일 0시 7분경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두 명의 경찰관에게 팔짱을 끼인 채 호송차에 오를 때에도 김 회장은 취재진이 심경을 묻자 “담담합니다”라고만 말했다.
반면 김 회장을 호송한 경찰관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번 사건의 수사본부장인 장희곤 남대문경찰서장은 김 회장과 경호담당 진모 과장을 유치장에 분리 수감한 뒤 기자들과 만나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증거인멸의 우려 등 경찰이 적시한 구속 필요 사유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장 서장은 “앞으로 외부세력 개입 등 (의혹이 규명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에 대해 신속히 수사를 진행해 모든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이 유치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경찰 관계자는 “김 회장이 처음부터 혐의를 부인하는 바람에 호미로 막을 일을 결국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수사를 지휘해 온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은 “우리가 뭐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언급을 피했다.
김 회장이 수감된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는 1층과 2층에 8개씩 16개의 방이 있으며 현재 마약, 절도, 폭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7명의 유치인이 3개 방에 분산 수용돼 있다.
4.3평 크기의 유치장 각 방에는 서 있을 때 허리까지 가려지는 문짝이 달린 화장실이 있어 용변을 보고 세면을 할 수 있다.
식사는 오전 7시, 오전 11시 반, 오후 5시 반 등 하루 세 번 1400원짜리 ‘관식(官食)’이 제공된다. 관식의 구성은 보리밥, 김치, 단무지로 단출하다.
○ 법원, 고심 끝에 영장 발부
더욱이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김 회장이 경찰 조사 때 혐의를 전면 부인했던 태도를 바꿔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하고 나서면서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아들이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흥분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사건 당시 아버지로서의 심정을 거듭 밝히면서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혐의를 계속 부인하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비쳐 영장이 발부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태도를 바꾼 것. 특히 김 회장 측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폭행 사건 이후 S클럽의 사장, 종업원들과 합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합의금 명목으로 1인당 10억 원씩 80억 원을 요구받았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등 ‘맞불작전’도 폈다.
김 회장은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일시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별것 아닌 일을 크게 벌인 것 같다”며 “저처럼 어리석은 아비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은 혐의 시인에도 불구하고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들은 그동안의 수사 과정에서 공범이나 증인 등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해 왔음을 알 수 있다”며 구속 결정을 내렸다.
11일 오전 10시 40분경부터 3시간 가까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김 회장은 서울중앙지검 4층의 피의자 호송실에서 8시간여 동안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오후 8시경 저녁식사로 배달된 도시락도 절반 이상 남겼다.
결국 오후 11시경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김 회장은 굳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14년 전인 1993년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구속됐다. 당시 국내 30대 재벌그룹 총수 가운데 구속된 최초의 사례였던 김 회장은 50여 일간 구속돼 있다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2000여만 원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김 회장의 구속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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