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통계 제대로 읽기]조기유학, 약인가 독인가

  • 입력 2007년 5월 15일 03시 02분


2005학년도에 해외 이주 또는 부모가 해외에 파견되어 동행 출국하는 경우를 제외한 순수 조기유학생은 2만400명이었다. 이를 학교 급별로 구분하여 보면 <표1>과 같다. 2001년에 비해 중고등학생은 2배, 초등학생은 거의 4배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조기유학이 증가 추세를 보이는 이유를 살펴보자. 조기유학을 보내는 이유는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영어교육이다. 특히 원어민 수준의 발음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어릴 때 배울수록 좋다는 생각이 초등생 조기유학의 결정적 동기가 된다. 영어만 잘하면 진학은 물론 취업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도 조기유학을 고려하는 주된 이유다.

둘째, 입시 위주의 국내 교육에 대한 불만이다. <표2>와 <표3>은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요인과 자살을 생각하는 동기를 조사한 것이다. 두 가지 조사에서 모두 학업 부담이 가장 큰 요인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입시에 성공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학벌 중심 사고가 널리 퍼진 사회다. 이 때문에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방식과 학생의 개성과 특기를 살려주지 못하는 획일적인 수업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다소 경제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조기유학을 보내려는 부모들이 많은 것은 이러한 교육 현실에 대한 환멸 때문이기도 하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싶은 욕구는 모든 부모가 갖는 공통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 일반화된 국내 현실에서 사교육비와 외국 유학 비용에 큰 차이만 없다면, 부모들로서는 자녀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조기유학을 고려할 수도 있다. 특히 저출산 현상으로 한 가정에 자녀가 1명뿐인 경우가 많아지면서 ‘내 아이는 특별하다’는 부모들의 인식과 맞물려 조기유학은 점점 더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셋째, 글로벌 마인드(global mind)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조기유학을 가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보다 넓은 시야와 자유롭고 유연한 세계관을 갖게 되기 때문에 자녀를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인재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은 조기 유학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나라 교육 체계가 세계화에 적합한 인재 양성과는 무관하다고 느낀 부모들의 불만이 개별적 대응으로 이어지면서 조기유학 바람을 부채질하는 셈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조기유학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

조기유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조기유학이 학력에 의한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기유학 붐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층에서 더욱 가속화하는 경향을 나타난다. 이 때문에 교육의 경제적 심리적 양극화도 커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상류층에 이어 중산층까지 조기유학 붐에 편승하면서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등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이는 가족 해체 현상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 고등학교에 유학을 보낼 경우 한 해에 3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중산층은 대체로 연봉의 50-80% 정도를 자녀에게 보내지만, 심하면 수입의 100%를 보내는 사례도 있다. 결국 빚을 얻어 자녀를 유학 보냈다가 경제적 부담으로 자살하는 예까지 발생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조기유학으로 인한 외화유출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준에 이르렀다(<표4> 참조).

조기유학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없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표5>에서 알 수 있듯이 조기유학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유학알선업체에서 얻게 된다. 이 경우 상업적 유학 알선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정보는 빼고 좋은 내용만 가려 전달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정보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정보와 환상 속에서 유학을 떠난다면 실패할 확률도 높아진다.

조기유학생들은 현지 언어에 익숙해지기까지 언어와 문화의 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수업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수업 참여에도 제한을 받게 된다. 자연히 학업 성취도도 떨어지고 현지 학교 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외톨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무조건 조기유학을 막을 수는 없다. 대체수단을 제공하거나 조기유학 후 잘 적응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한다. 우선 조기유학을 계획하는 부모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 올바른 정보를 안내해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여 좀 더 합리적으로 유학비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유학을 가지 않아도 영어를 잘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원어민 확충과 같은 공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영어마을 등 국내에서 효과적으로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확대해야 한다.

윤상철 경희여고 철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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