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화재로 불에 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삭녕 최씨 폄재공파 종가는 1905년 지어졌으며, 조선 말기 남원 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 온 여인들의 삶을 그린 고 최명희 씨의 대하소설 ‘혼불’의 무대이기도 했다.
친척뻘인 작가 최 씨가 이 집에 자주 놀러 왔고 박 씨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혼불을 집필했다.
최 씨는 이 소설로 단재상 호암상 전북애향대상 등을 받았고 1998년 암으로 숨졌다.
실제 소설 속에서 종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끝없이 겉도는 남편 대신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효원 아씨’의 모델이 박 씨로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혼불은 픽션이고 실제 박 씨의 살림이 소설처럼 그리 곤궁하지는 않았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종가를 지킨다며 서울로 모신다는 제의를 번번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18세에 전남 보성에서 시집온 그는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3남매를 키우며 75년 동안 종가를 지켰다.
큰딸 최강희(70) 씨는 “어머니는 보통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이라며 “매일 오전 4∼5시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은 뒤 부엌문을 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날 불은 목조 기와 건물 5채 중 안채 84m²(25.4평)를 태워 2900여만 원(소방서 추산)의 재산 피해를 낸 뒤 1시간 반 만에 진화됐다.
이 집에서 함께 사는 친척인 박모(80·여) 씨는 “갑자기 불꽃이 ‘딱 딱’ 튀는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는데 부엌과 다른 방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보고 서둘러 밖으로 빠져 나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박 씨의 방에 있는 변압기 합선으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이 집에는 숨진 박 씨 등 2명만 살고 있었다.
둘째 딸은 이화여대 간호대학장과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영희(68) 씨이며 아들 최강원(63) 씨는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발인은 18일 오전 6시 반 서울대병원. 02-2070-2020
남원=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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