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저녁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벨러버르토크 콘서트홀. 클래식 연주자라면 누구나 서 보고 싶어 하는 이곳에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섰다
이날 전남 여수시 여도초등학교 오케스트라 단원 80명은 쇼스타코비치의 축전서곡을 시작으로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 쇼팽의 크라코비아크 F장조 등 클래식 음악을 연주했다. 이어 14명의 사물놀이팀과 한국 민요를 주제로 만든 ‘코리아 트러디셔널 포크송’을 협연했다.
2시간으로 예정됐던 공연은 40분가량 길어졌다. 4층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청중으로부터 5차례나 커튼콜을 받았다.
김성주(11·4년) 군은 “세계 최고의 클래식 연주홀에서 기립박수를 받았던 그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훌륭한 첼리스트가 돼서 그 자리에 다시 서고 싶다”고 말했다. 인구 30만 명의 중소도시인 여수의 초등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오케스트라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 ‘방과 후 학교’의 천국
여수시 봉계동에 자리한 여도초등학교.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산업단지 내 19개 기업이 기금을 출연해 1981년 문을 열었다.
전교생이 1500여 명인 이 학교는 방과 후 학교로 음악, 미술, 과학, 스포츠, 어학, 컴퓨터, 바둑, 문예 등 19개 분야에 81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5, 6교시 정규 수업이 끝나면 교실이나 별도 연습실에서 1∼2시간씩 특기적성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학교에는 오케스트라, 국악관현악반, 리코더반, 풍물반, 영어반, 컴퓨터반, 무용반 등 학생들을 위한 전용 연습실이 12개나 있다. 방과 후 학교는 철저하게 수요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학교 측은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설문조사를 해 강좌를 신설하거나 없앤다.
방과 후 학교 운영을 맡고 있는 장애순(55) 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개설하고 개인지도로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 반 정원이 15명을 넘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말했다.
학생 1인당 월 수강료는 외부 강사의 경우 2만∼2만5000원, 원어민 영어강사는 3만 원, 관현악 레슨비는 10만 원으로 일반 학원비의 3분의 1 수준이다.
○ 인성교육의 성과
오케스트라단은 전국 초등학교 가운데 최대 규모. 1월 2012 세계박람회 홍보사절단으로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5개국 8개 도시에서 공연을 여는 등 지금까지 3차례 해외공연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동안 오케스트라를 거쳐 간 학생은 1000여 명. 이 가운데 40여 명은 외국 유학을 거쳐 국내외에서 연주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60명의 국악관현악단과 20명의 리코더앙상블반, 40명의 동요사랑반 등은 매년 학교나 여수시민회관에서 정기 연주회를 연다. 수학영재반, 과학영재반, 논술반 등은 전국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주최한 세계 창의력경연대회에서 초등부 금상을 수상한 김현근(13·6년) 군은 “과학영재반에서 선생님과 함께 재미있게 공부하고 실습을 많이 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재경 교장은 “개교 때부터 특기적성교육에 정성을 쏟은 게 점차 결실을 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수=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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