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10차 공판’,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4차 공판’, ‘현대차 비자금 사건 3차 공판’….
‘거악(巨惡)’ 척결의 첨병 구실을 해 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들의 이번 주 주요 일정이다. 지난해 중수부 1, 2과에서 수사해 기소한 사건 항소심 재판 ‘뒤치다꺼리’가 요즘 이들의 주 업무가 돼 있다.
이 때문에 검찰 내에선 우스개로 중수부를 ‘중앙공판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판 참여가 대검 중수부 검사들의 주 업무가 된 데는 정치권의 ‘중수부 힘 빼기’도 한몫했지만,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통상 대선이 있는 해에는 중수부 차원의 대형 사건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검찰 내부의 불문율이 작용하고 있는 것. 검찰 수뇌부도 올해 들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같은 방침을 내비치고 있다.
검찰 수뇌부는 최근 사석에서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선거 중립이 더 중요한 만큼 정치적으로 오해를 부를 수사에는 손대지 말라는 취지다. 고소고발이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수사에 나서더라도 일선 지검에서 사건을 맡아 처리하도록 한다는 게 수뇌부의 방침이다.
대검 관계자는 “대선이 있는 해에는 아무리 작은 기업을 수사해도 ‘기업주가 정치권 누구와 친하다더라’는 식으로 엉뚱하게 소문이 증폭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대검 중수부 1과가 의욕적으로 수사한 D사 전 법정관리인 Y 씨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 의혹 사건은 Y 씨가 끝내 입을 열지 않아 별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Y 씨가 여권의 한 대선주자와 가깝다는 설 때문에 검찰 수사 배경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가 올 한 해를 조용히 보내리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실제로 대검은 중수2과에 주요 사건 공판 업무를 거의 전담시키고, 중수1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손을 비워 놓고 있다.
오랫동안 준비한 내사 사건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정치권에서 불거진 의혹 사건을 떠맡게 될 수도 있기 때문. 이는 과거 대선이 치러진 해마다 어김없이 돌발변수가 발생했다는 학습효과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15대 대선이 치러진 1997년과 16대 대선이 있었던 2002년에 검찰은 ‘외부적’ 요인으로 사건을 떠맡았다 탈이 났던 전례가 있다.
1997년에는 한보 사건 재수사,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의 비자금 의혹 고발 사건 수사 유보에 이어 2002년에는 이용호 게이트 재수사 과정에서 청와대의 수사 중단 압력과 당시 검찰 수뇌부의 수사 기밀 유출 사실 등이 드러나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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