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부터 바른 방법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책 신문 등을 읽을 만한 여유가 없는 학생들도 마음으로는 항상 많이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담은 과장하자면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습니다. 정보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보사회에서는 이해하고 암기한 ‘지식’보다는 전통적 용어로 하자면 ‘지혜’의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됩니다. 이때 지혜란 한마디로 문제해결 능력을 말합니다. △문제의 성격을 정확히 판단하는 판단력 △그에 맞는 정보를 찾아내는 검색 능력 △찾아낸 정보를 문제 해결을 위해 적용하는 응용력 △기존의 정보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 때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창의력 등이 중요한 경쟁력입니다. 그런데 많이 읽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바로 지식 지향적인 시대의 유산입니다. 특히 논술 학습에서는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는 적절한 방식으로 읽기 지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적절한 읽기를 위해서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학에서 이른바 필독 도서를 발표하면서 학생들에게 버거운 분량의 책을 통째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읽기 지도의 관점에서 보면 무책임한 일입니다. 좀 더 세밀한 읽기 지도안이 필요합니다. 특정 주제에 대하여 읽어야 할 책을 정한 다음, 책의 어느 부분을 읽어야 하는지 세밀하게 규정해 주어야 하고, 그 부분을 읽고 어떤 문제를 정리하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지도 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정된 책들을 어떤 순서로 읽을 것인지도 정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말로 된 적절한 읽기 자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들이 공동 작업을 통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논술 교사들의 커뮤니티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읽기 지도 때문입니다.
논술 학습으로서의 읽기는 양보다는 질이 중요합니다. 활동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읽고 끝나는 방식으로는 학습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읽었으면 반드시 자기 시각에서 분석 평가하면서 따져보고, 자기 생각이 올바른지 다른 사람과 토론 논의해 본 다음, 이를 바탕으로 한두 줄이라도 써 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읽는 과정 속에서 읽기 능력이 향상되고 사고 능력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논술 학습에서는 읽기가 다음 과정인 생각하기, 토론하기, 쓰기와 연계될 때 의미가 배가됩니다.
다음은 생각하기입니다. 생각하기는 근본적으로는 개인적 과정이기 때문에 교사가 책임지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자극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 자신의 삶에서 문제가 될 만한 주제들을 골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하기는 읽은 것을 자기화하는 과정의 의미가 있으므로 읽기와 연계할 필요도 있습니다. 읽은 것을 비판적으로 사고해서 평가하도록 안내하고, 적절한 문제거리를 던져 주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읽은 것을 창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론하기는 논술 교육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특히 논술 교육과 관련된 토론은 논쟁적 토론입니다. 우리가 보통 토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보통 ‘토의’ 혹은 ‘논의’(discussion)라고 일컫는 것과 ‘논쟁’(debate)이라 부르는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토의는 일반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논점)에 대해 서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면서 때로는 합의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논쟁은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쟁점을 두고 주장을 펼치고 논박을 주고받는 의사소통 행위입니다. 논쟁은 논증 능력을 길러 준다는 점에서 논술 교육에서 필수적 과정입니다.
논술 학습과 연관된 토론은 가능하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지적 능력이 비슷한 수준의 학생끼리 토론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지적 능력이 차이 나면 속도가 느린 학생은 합리적인 반론보다는 “하여튼 너의 주장은 옳지 않아” 식의 냉소적 반응을 보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창조적인 토론이 힘들어집니다. 비슷한 속도의 학생끼리 토론하면 속도가 느린 학생들도 비록 진행과정은 더딜지라도 결국에는 도달할 지점에 다 도달합니다. 둘째, 인간적 신뢰가 있는 학생끼리 토론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만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끝까지 논쟁할 수 있고, 그런 과정 속에 논증 능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견 대립이 감정 대립으로 비화되거나, 아니면 그럴 염려 때문에 “그래, 네 주장이 맞는 것으로 하자”는 식으로 토론을 대충 마무리지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셋째, 토론의 주제는 ‘…란 무엇인가?’식의, 합의를 찾아가는 탐구형 주제보다는 명료하게 찬반 양론이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자기 생각을 정해서 정당화하고 상대 주장을 논박하는 과정 속에서 논증 능력을 배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 교수·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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