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창봉]배포조차 못하는 ‘차세대 경제교과서’

  • 입력 2007년 5월 23일 03시 00분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공동 개발한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을 숱한 논란 끝에 일선 고교가 아닌 전국 시도교육청과 도서관 등에만 배포하기로 결정하자 정권의 눈치를 보는 ‘코드행정’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당초 외국의 풍부한 사례를 소개해 학생들이 스스로 경제 개념을 익히게 하고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경제교과서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단체들이 2월 ‘경제교과서가 지나치게 기업의 의견만 반영했다’고 반발하자 교육부는 배포 계획을 갑자기 중단했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교육부는 발설자를 찾는다며 간부들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까지 뒤지는 등 법석을 떨기도 했다.

곡절 끝에 공동 저자 표기에서 교육부의 이름을 빼고 한국경제교육학회만 넣기로 하고 책의 제목도 교과서가 아닌 ‘모형’이란 모호한 단어가 붙었다. 또 노동계의 시각을 반영한다며 10쪽 분량의 부록을 붙여 경제교과서의 정체성을 흐렸다.

그나마 일선 고교가 아니라 시도교육청 등에만 배포하기로 하자 도서관 ‘장서’로 쓰려고 예산을 5000만 원이나 들여 경제교과서를 만들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22일 성명을 내고 “갈지자 행보로 차세대 교과서를 누더기로 전락시키더니 급기야 배포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했다”며 “교육철학에 대한 소신은 찾아볼 수 없는 눈치 보기 행정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제교육학회 전택수 회장도 “경제교과서의 집필 목적은 학교 수업에 참고자료로 활용해 올바른 경제적 시각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라며 “도서관과 자료실에만 배포한다니 유감”이라고 밝혔다.

차세대 경제교과서로 시장경제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도모하려던 교육부는 두 가치관 사이의 간극만 부각한 채 우왕좌왕했다. 김신일 부총리가 대학입시 3불(不) 정책의 홍보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목소리를 높이면서 “평소 소신을 꺾은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그가 ‘경제교과서 파동’에서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듣고 싶다.

최창봉 교육생활부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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